V I O L E A N C E - PART 1 - 1 > 동현, 자신의 상황을 발견하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만…… 시팔, 집이 IMF로 인해 아버지의 표현을 빌자면 ‘풍지박산이 났다’. 제길. 재수없게 하필 우리 집이냐. 다른 집 다 뽀개져도 우리 집은 무사할 줄 알았는데. 빚장이들에게 쫓긴 부모님은 야반 도주를 했고, 집에 홀로 남은 나는 멍청히 하늘만 보고 손가락을 빨며 세월을 지냈다. 전화가 폭주를 했고 미친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 하소연, 애원, 절망, 분노, 욕설, 협박, 살의… 견디다 못해 내 소유 아파트로 옮겼다. 세월은 흘러 흘러 졸업식이 지나 버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 졸업식. 가슴속에서 웅성대는 불안과 싸우며 졸업장과 앨범을 받아 도망치듯 돌아왔다. 속으로 졸업식이 별 거냐. 졸업식에 저렇게 삐까번쩍하게 하고 나와야 하냐… 하고 생각을 했지만 신명나게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 깊이 각인되어 좀 처럼 사라지지가 않았다. 돌아오는 등 뒤로는 강당으로 향하는 동기들의 환청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멍한 머리로 혼자 집에 있었다.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팔, 내가 얼마나 내 힘으로 한 일이 없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인정하자. 나는 잘난 부모 돈과 권력으로 살아온 개자식이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부모님과 연락이 닿기만을 기다렸다. 핸드폰을 쥐고 앉아 계속 계속… 뽑힌 전화 코드를 멍하니 응시하며 쪼그리고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밥이 되기를 기다리고 자고 또 자고… 깨어나 멍한 머리로 또 창밖을 보고…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이러면 안 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석 달만에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제길, 어차피 서울에 있는다고 상황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대학도 졸업했는데 더 이상 있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방을 내놨다. 그런데 왜 그 리 세입자가 없는지… 시팔. 세월아 내월아 하는 동안 물가가 어쨌는지 저쨌는지 집 시세가 내려갔다고 집도 안 나가 홧김에 부르는 대로 넘겼다. 그래도 아직 돈 몇 천은 수중에 남았다. 통장에 넣고 카드를 들고. 전화기를 들었다. 나는야- 사나이- 진짜 사나이- 산 사나이--♪ 억지로 노래를 만들어 흥겹게 부르며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나섰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하나도. 물론 일 같은 거 해본 적도 없고 지금껏 집의 식충이로 살아왔다. 밥도 내가 지어 본 적도 없고 방 청소 따위도 안 해 봤다. 병신 같은 과 기집들이 잘난 척하며 쳐들어와 해 주곤 했지만 돈이 끓기니 그것도 다 떨어져 나갔다. 제길, 지금까진 집이 잘나서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해 본 적도 없다. 돈밖에 수중에 넘치는 게 없었으니까. 대학은 서울에 있는 4년제에 들어가면 아파트랑 차 사준 데서 들어갔고, 그 뒤는 유학만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는데. 젠장,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되 는군. 으악. 엄마아- 나 이제 어떻게 살아---! …가 진짜 그 때의 내 속마음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짜 비밀인데. 사실, 난 여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완곡한 표현으로 남자… 에게 관심이 끌리는… 뭐… 그런 거다. 하지만… 이 날 이 때까지 한 번도 관계를 가져 보지 못했다. 손만 뻗으면 상대는 많았다. 내가 튕겨서 그렇지. 그리고 군대에서도 기회는 많았지만 결국… 나는 눈이 높으니까. 그래서, 눈이 차는 자식이 없었다. ……………이건 아무도 모른다. 비밀이다. 내가 무덤까지 지고 갈. 내가 XX라고 내 입으로 말 못해―! 한 번도 남자랑 손도 못 잡았고 키스도 못해 봤고 물론 첫 체험 따윈 웃기지도 마셔, 다. 시팔, 누가 이러고 싶어 이렇게 됐냐. 물론 고상한 척하는 기집들과는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너무 달라붙어 마치 자신의 소유인 양 구는 그 태도에 질려 있던 참인데 이 기회에 모두 정리가 됐다. 그나마 아쉽게도.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좋게 생각하자. 내가 찬 거라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거라고. 젠장, 다 필요 없다. …뭐가. 뭐가 다 필요 없어. 언제 있기는 했냐. 아아… 모르겠다 이젠.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누구랑 화끈한 사랑. 까지는 안 바래도 한 번 누구랑 해보고 죽고 싶다. 좋다! 싸나이. 진짜 싸나이를 찾아서―――!!!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며 나는 소리없는 외침을 높이 높이 울렸다. 때려 죽--여도 화끈한 사랑 한 번 해 보고 죽을란다. 이왕 조진 인생. 누가 날 말리겠나. 멋대로 살아보자. 화끈하게! 단 한 번뿐인 인생인데! 2 > 떡대들이 모여 있는 산으로. 전진! 밥그릇 위로 둥글게 높이 쌓인 밥을 보며 잠시 동현은 묵념을 했다. 주위는 그것을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고 일어나 우르르 다시 일하러 나가는 떡대들. 내… 내가 아무리 서울 샌님이라도 이건 좀 심했다. 홀로 남은 식탁에서 산처럼 수북한 밥을 보며 동현은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무슨 마징가라고 진짜로 혼자 나왔겠냐. 결국 아는 놈이 있는 산골로 왔다. 쨍-------------! 오, 태양. 너 참 눈부시구나. 아………아찔…… 강렬한 한방을 맞으며 기절한 동현이었다. 눈을 뜨니 이불 위였다. 침대가 아니라 딱딱하다. 엉덩이랑 어깨가 아프다. “조금 먹으니까 그러지. 다 먹어.” 무서운 상판을 한 상권이 이마에 찬 수건을 꼭꼭 짜서 올려 주며 한심반, 걱정 반 섞어 말한다. 의외로 착하다. 처음 만났을 때 `니가 상권이냐? 그럼 하권이는 어딨냐?' 라고 했더니 나 때렸던 거 용서해 주마. “…소화를 시킬 수가 없어. 먹는 것까진 어떻게든 하겠는데 움직이면 넘어와…” “다 먹기나 해. 먹고 나선 좀 쉬어. 곧바로 일하지 말구.” 사실 앞에도 여럿이서 자는 게 익숙지 못했지만 잠을 설치던 동현은 이곳에 와 오랜만에 죽은 듯이 잘 수 있었다. 다음날. 그리고 또 같은 반복. 하지만 상권은 포기하지 않고 동현을 끌고 나갔다. 아, 말하는 걸 잊었는데 여긴 상권이네가 소유한 산이다. 별장이라고 하나. 아무튼 산이다. 서울 촌닭인 나에게 지리는 묻지 말아다오. 배낭 하나 달랑 들고 멍청하니 길바닥에 나와 입 벌리고 서 있다가 핸드폰이 울리기에 받아 보니 상권이였다. ‘나, 길거리 나섰다’ 했더니 코란도로 데리러 와서 나를 주워 갔는데… 아, 상권이는 내 친구의 친구다. 몇 번 술은 같이 마셨지만 내가 주량이 약한 관 계로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착한 놈이다. …그러길 빈다. 어찌어찌 해서 여기 도착했다. 아무튼. 여긴 산이다. 그게 중요한 거다. 그리고 이 집은 나무 집이다. 다락이 있는 걸 보아 적어도 30년은 지난. 벽으로 바람이 술술 들어와 무섭다. 벽에 손을 대면 바람이 느껴진다. 그 정도다. 방이 많은 것도 무섭다. 중앙 복도식으로 방이 연이어 죽 늘어져 있는데 창문 밖으로는 나무가 빽빽해서 경치는 좋다. 흐트러지게 피어나 불어오는 바람에 하얀 꽃잎을 내게 쏱아붙는 벚꽃. 하지만 봄바람의 감상에 빠질 여유는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일어나면 상권이랑 떡대들이랑 밥을 먹고 나가 목장갑을 끼고 길을 트는 게 일이다. 그 와중에도 내가 실수라도 할라치면 대원이라는 놈이 신났다고 빈정댔다. 죽이고 싶다. 저건 왜 생긴 건 반반한데 성질은 저리 더러운 건지 내 성질을 돋구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내가 또 한 성질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참아야겠지만. 화나는 건 화나는 거다! 온 다음 날 상권이는 작년에 내린 폭우로 산이 무너졌다고 내게 얘기했다. 그래서? 했더니 잠자코 상권이가 날 그리로 끌고 가 목장갑을 꼬옥 손에 쥐어 줬다. 무너졌다는 산길로 끌려가기를 수차례. 상권이는 내 용도를 알게 해주었다. 내 몸은 놀자고 있는 게 아니라 일하라고 있는 거였다. 삽이랑 곡괭이를 들고 길을 고르고 하는데, 웬 바위는 그리 많고 나무 뿌리가 그리 단단한지 진척이 아주 아주 느리다. 나는 돌을 주워다 멀리 버리고 왔는데 나중엔 그냥 휙휙 근처에 던졌더니 그것도 제대로 못한다고 또 대원이가 또 한 소리했다. 화난다. 대원이가 내가 온 뒤로 진척이 느려졌다고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언제 한 번 잠든 뒤에 쥐 패줘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보도블럭 깨진 거 보고 도로 공사 허술하게 했다고 욕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내 숨소리가 변태 같다. 현재 그 땅 고르기 작업만 일주일째. 겨우 겨우 10분 정도 걸어다닐 정도의 길이 만들어졌다. 닭이 왜 하루 종일 우는지 알 수도 없고 왜 벌레가 나만 무는 지도 모르겠다. 뻐꾸기인지 부엉이인지는 밤새 삑삑빽빽 대고 낮에는 비둘기가 요사스럽 게 사람을 홀린다. 내가 인간 모기향으로 불리며 대원이의 비웃음을 산 건 화가 나지만 내 옆에 있으면 모기의 습격을 피할 수 있다며 놈들은 은근히 날 반기는 눈치다. 서로 내 옆에서 자려고 하는 거 보니. 웬 모기가 봄부터 설치는지. 더워 이놈들앗-! 머리 숫자는 상권이. 상권이 형 승규. (아악, 키는 나 정도인데 뚱뚱해 내 타입이 아니다) 상권이 친구로 머리가 길어 뒤로 올백으로 묶은 대원이 (미술 한다고 재료들을 들고 왔는데 그대로 잡힌 눈치다. 엄청 날 갈군다. 그리고 악랄한 인간 이다.) 역시 집안이 부도로 이산가족이 되어서 다 때려치우고 내려 온. 표정이며 얼굴부터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광호. 이중에 상권이 형 승규는 다행히도 가 버렸고 남은 건 상권이랑 나. 대원이 광호 넷이다. 다 떡대들인데 인물은 대원이가 제일 낫고, 체격은 다들 좋은데……내 타입은 없다. 그나마 대원이가 시원한 눈매며 얼굴 생김에다 찰랑이는 머리칼. 태권도 사범 자격까지 있는 한 몸매. 하는데… 보다시피 성격이 영~ 황이다. 흐흑……… 뭐, 친구 중에서 고를 생각은 없다. 파랑새는 옆에 있다구? 파랑새 좋아하시네. 나도 눈이 있다. 나중에 골치 아플 것 같은데다 다들 성격들이 만만치 않다. 상권이는 떡대에다 머리 스타일이 마치 목 치는 망나니처럼 깊게 풀어헤쳤고, 더구나 얼굴은 무섭게 생겼지만 터프하다고 하나… 의외로 잘 돌봐 주 고, 대원이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말꼬리를 붙잡고 빈정대서 ‘갈구기 맨'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광호는 시니컬한 허무주의자인데 빠릿빠릿해서 세탁이며 식사 준비 설거지를 다 한다. 까무잡잡한 게 보기 좋지만 이건 또 자기 속내를 안 보이는 면 이 있다. 게다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눈칫밥을 먹어서인지 사람들하고 친하지도 않고 남에게 피해가 가거나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게 둔한 내 눈에도 보 일 정도였다. 쪼끔 불쌍하다. 나…………? 나는 식충이다. 우… 나도 일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언제나 궁금한 게 있어. 왜 너희들은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어?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래? 선천적이야?” “너. 밥 먹기 싫으니까 또 시간 끄는 거냐?” 상권이가 탁, 수저를 내려놓는다. 다 먹었다. 일등이다. 상 줄까? “아니…” “일 많이 하면 배 고파. 먹어.” “응……” 탁, 이번엔 대원이다. 이등. “그래, 니가 일을 덜 해서 그래.” 저 갈구기 맨! 얼굴만 반반한 못된 자식! (넌 상? 흥, 웃기지 마셔. 넌 국물도 없어.) 나는 대원이가 점점 더 싫어졌다. 오기로라도 다 먹는다 먹어! 나는 광호랑 밥통 바닥을 박박 비웠다. 먹은 뒤 20분간의 휴식 시간. “이젠 괜찮냐?” “…좀 살 것 같아.” 먹은 직후의 현기증이나 거북함이 서서히 가시고 있었다. 자, 이젠 일을 해야지! 3 > 시간은 물처럼 흘러… 하늘이시여! 오늘로 드디어 여기 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잘도 견디었다. 화끈거리는 내 어깨와 목덜미. 날카로운 햇살에 완전히 익어 버린 내 몸뚱이여…… 처음엔 옷을 입고 일했다. 좀 더러워지면 세탁기에 넣고 하다 보니 하루에도 서너 벌을 갈아입어 옷이 마르는 것 보다 더러워지는 게 빨라 결국 런닝에 바지만 입고 일했다. 그 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젠 바지만 입고. 나중엔 걸친 게 몇 개나 남을까? 마침 날씨도 따셔진다 싶더니 갑자기 화끈해졌다. 긴 청바지를 무릎에서 찟어내 입고 하는데 점차 바지 길이가 줄어 올라가고 있다. 양말? 됐네 이 사람아. 맨발의 청춘. 떡대들 사이에 끼어 할당량을 마치려고 필사적으로 땅을 파고 고르고 이고…… 코 끝에 맺힌 땀방울을 훅, 불어 떨쳐 냈다. 땀은 등을 타고 흐르고… 이마에서 턱으로 눈으로 흐르는 땀에 눈 뜨기도 힘든 판이다. 이거 봄 맞아? 왜 이렇게 해가 뜨거워!? 이제 이건 봄이 아니라 여름이다. 햇빛이 날 콕콕 찌른다. 5월 맞아!? 동현은 원망스럽게 태양을 노려보았다. 이마에 맺힌 땀이 눈으로 들어간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을 북북 닦았다. 젖은 수건이었는데 이미 미지근…눅눅한 정도로만 습기가 남아 있다. 으아~! 뒈지게 덥네!!! 밤이면 잘 자야 했지만 워낙 올빼미처럼 살아온 터라 좀처럼 일찍 자기는 힘들고 자도 도중에 금새 깨어났다. 몸은 피곤하고 졸리진 않고… 그러면 동현은 현관문을 열고 검은, 칠흑처럼 짙게 물든 밤공기를 헤치고 나와 담배를 피웠다. “후우………” 긴 한숨. 이런 밤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숨어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저 깊은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이렇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나를. 탁 -- “!” 흠칫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았다.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같다. 아무것도 없을 어둠에서. 그 어둠 속에서 뭔가가… 등으로 팔로 소름이 돋아났다. 고양이? 호랑이? 들짐승?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쳐 손잡이를 잡고 재빨리 들어와 문을 잠갔다. 창문도. 그리고 도망치듯 방으로 와 사내들 사이에 끼어 누웠다. 무, 무서웠다…… 휴우…… 간신히 억눌린 숨을 뱉어 내고 아무나 옆에 자고 있는 녀석의 옆구리에 웅크리고 달라붙었다. 땀냄새가 무지 났지만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이 와중에…… 야, 야 참아. 이런 때 흥분하지마.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눈을 꽉 감았다. 꽉 쥔 손에 땀이 배겨 나온다. “기사-----앙!” 번쩍. 눈이 부신 햇살이 온 방에 가득차 있었다. 눈을 깜빡거리며 주위를 보았다. 깨운 광호를 제외한 모두가 덜 깨인 눈을 하고 부시시 몸을 일으킨다. 지난밤의 일은 꿈이었나? 꿈………? 정말? 안 떠지는 눈을 쓱쓱 비비며 길게 하품을 했다. 앞의 대원이가 팬티 엉덩이로 손을 넣어 북북 긁어대는게 보인다. 현실 맞다. 길이 다 트였다. 할 일이 없어진 장정들과 뒤굴거리는데 창틀의 페인트가 일어나 있는 게 눈에 잡혔다. 다가가 긁자 형편없이 쉽게 뜯겨져 나온다. 이거 페인트 맞아? “사포… 일자 드라이버” 어느새 옆에 온 상권이 살 것을 메모한다. “요즘엔 십자 일자 양 쪽 다 돼는 거 있더라 그걸로 사자.” 대원이도 거든다. 착착 얘기가 진행이 되고 차에 시동이 걸려진다. 내가 일을 만든 느낌이다. 이제는 창문을 하나씩 떼어다 들고 나가서 그늘진 벽에 받쳐 놓고 사포질을 하게 되었다. 판판하지 않으니 손목도 아프고, 고개도 아프고, …힘들다. 그래서 이번엔 창틀을 김장용 독 위에 올려놓고 문질렀다. 훨 낫다.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종일 했는데도 다 하는데 5일이 걸렸다. 그리고 락카를 뿌렸다. 스며들어 도통 효과를 못 봐서 10통 가량이 소모되었다. 제길. 유리에 묻히지 않으려고 붙였다 뜯은 테이프가 마루에 산처럼 쌓였다. 상권이가 다시 차를 몰고 밖으로 시내로 나가 락카며 페인트를 사 날랐다. 그리고 위에 페인트를 발랐다. 반들반들하게 세겹으로. 두툼하게. 시험해 보니까 대원이의 미술용 붓으로 바르는 게 가장 잘 말라졌다. 대원이가 그날 날 죽일려고 했지만 상권이가 날 살려줬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어떤가 보려고 한 건데… 밤이면 페인트 신나 냄새를 이기지 못해 양파를 잘라 머리맡에 좌악 뿌려 놓고 잤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또 발라 다시 페인트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래도 잘 때는 양파는 잘라야 했다. 말라 버린 그 양파는 저녁에 돼지 삽겹살이랑 구워서 먹었다. 더럽긴? 맛있기만 했다. 일어나면 다시 떼어다 밖으로 이동하고, 비라도 오면 재빨리 창문을 들고 들어오는 신속함이 소요되었다. 이제 남은 건 문짝. 이젠 이력이 나서 능숙하다. 음하하하! 아침이면 밥을 먹고 문을 드라이버로 떼어다 밖에서 사포질하고 점심 먹고 잠시 낮잠을 자다 어두워지면 털어 내고 들고 와 다시 달아 두고 자길 반복 했다. 일이 드디어 다 끝나자 이젠 여기저기 실수로 묻은 페인트 투성이의 얼룩을 지우기 위해 아세톤이 소요되었다. 신나로 하려 했지만 그 강력한 냄새에 모두 중독 되어 걷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워해서 아세톤으로 조금씩 조금씩 지우게 되었다. 바닥에 달라붙어 기어다니며 지우는데 대원이가 내 머리를 손으로 쓸고 지나갔다. 어리벙벙. 우와, 뭔지 기쁘다. 더 열심히 해야지. 아세톤이 생각 외로 계속 더 필요하게 되는 덕분에 상권이를 따라 오랜만에 시내 구경을 했다. 오! 저 칼라풀한 네온사인 좀 봐! 잠깐! 조금만 더 보고-! 밖에서 하는 것과 집안에서 하는 일은 공기 순환상 일의 진척속도가 판이하게 달랐다. 팔의 근육은 나날이 붙어가고 몸이 달라져 갔다. 그리고 끝내는 지붕까지 칠하게 되었다. 이것도 일이라고 나름대로 힘들었다. 왜 익숙해지면 일들이 다 끝나는지 화가 났다. 밧줄에 매달려 하는 작업이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다르게 어려웠다. 밑에서 그 모습에 가관이라고 낄낄대면 일부러 실수인 척, 페인트를 뿌려 주며 서로서로 지워지지 않는 얼룩들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4 > 세월은 다시 물처럼 흘러… 한 달이 흘렀는지 두 달이 흘렀는지 일 년이 흘렀는지 세월은 잘도 갔고 드디어 해가 피부를 팍, 팍, 찌르게 되어 한여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너도 나도 다들 늘어져만 갔지만 잘도 일했다. 달라진 거라고는 12시부터 2시까지의 가장 해가 쨍쨍한 시간의 낮잠 시간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건강하게 다갈색으로 그을린 전신과 자라나 어깨를 덮는 긴 머리. 단단한 근육들을 한,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놀랐다. “이게… 나야?” 기묘한 느낌. 건강해진 신체와 해방감. 그리고 충족감. “이히히히…!” 신난다. 나 꼭 무슨 써핑하는 애들 같아. 와- 팬티 자국만 빼곤 다 탔구만. “왜 바지는 내리고 동현이는 저런데?” 광호가 눈을 크게 뜬다. “미쳤나 보지.” 역시 갈구기 맨 정대원. 다시 본색을 드러내는군. 어디 가겠냐 그 버릇. “야, 냄새나. 올려.” 구박이 속출했지만 유일하게 하얀 내 원래 색인 엉덩이와 나머지 살색을 비교하며 난 즐겁기만 했다. 이젠 정말 할 일이 없었다. 그러자 술파티가 벌어졌다. 니나노-------! 나도 이제 싸나이다-! 그런데 잠시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난 술이 약했다. 상권이가 소주 열댓 병을 들고 나타나 각자 두어 병을 담당했지만 나는 고기 굽는 담당이 되었다. 모기에게 뜯기며 문밖으로 나가 계단에서 구어야 한 다. 콩쥐 같다.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을 했고 안에서는 신난다고 부어라 마셔라 난리가 났다. 광호가 언제 나왔는지 옆에 왔다. “바짝 구어. 바짝. 돼지고기를 바짝 굽지 않으면 설사해.” 그러며 은근히 내 허리를 팔로 감아 온다. 어머니--! 저 드디어 딱지 떼요! 하지만. 세상일이란 그렇게 만만치 않는 법. 꼴 보기 싫은 대원이가 방해하러 나타났다. “빨리 구워! 너 굽다가 먹으면 주욱-어!” 나 잘되는 꼴을 절대 못 봐주는구나 너… “빨리 구워,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이건 토크쇼의 참참참 구호와 비슷하군. 익은 걸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순신 장군이 왜 죽었는지 알아?” “…화살 맞아서.” “술잔에 술이 비어서!” 핫, 또 잊었다. 대원이의 잔에 두꺼비를 한가득 부어 주자 마시더니 다시 따라 내민다. “어… 고마…” 워. 까지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입에 부어졌다. 크------------! 화아-----------! 죽이는군. 날 죽여라 죽여! 술 마시는데는 다들 일가견 한가닥 하는 터라 끝낼 생각이 없는지 끝을 보겠다는 건지 밤이 깊어도 파장 분위기가 나지 않아 동현은 얼굴도 식힐 겸 밖으로 나왔다. 간이 부어 시커먼 밤에 숲에 나와서 “이 정도면 나도 괜찮은 남자야. 그렇지?” 라며 혼자 실실대고 담배를 꼬나 물고 웃고 있었다. 겉모양이 바뀌었다고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땐 마치 내가 바뀐 것 같은 착각을 잠시하고 있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5 > 바이얼런스 혹시나 대원이가 따라나오지 않을까 하고 멍하니 넋 놓고 계단에 앉아 있었다. “꺄아악--------!” 째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 놀라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은 이미 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런 숲에 웬 여자의 비명이… 나무를 헤치고 달려가자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찟어져 펼쳐진 치맛자락. 앞 뒤 가릴 것 없이 여자 위에 있는 검은 그림자로, 달리던 속도대로 몸으로 부딪쳤다. 어떤 자식이 여기서 이런 짓을--!!! 탕---! “캬악--------!” 핫! 놈이 옆으로 쓰져지더니 몸을 일으켰다. 달빛에 비친 것은 하얀 이빨… 놈은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었다. “뭐… 뭐… 뭐야!?” 하필이면…! 키가 2m가 넘고 어깨가 떡 벌어진 놈은 하체의 곤두선 물건을 치켜올리며 포효했다. 느…늑대인간이냐 너? 뒤로는 선명한 보름달이 백 배경으로 떠 있다. 호러다 호러! 이가 딱딱 맞부딪쳤다. “제, 제길…! 도망쳐!” 여자는 얼어붙은 채 떨고만 있다. 다시 여자에게로 다가가길래 떨리는 발을 옮겨 놈에게 접근했다.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댄다. “제길… 자… 쉬이, 쉬…” 다가가 앞에 서서 천천히 손을 들어 놈의 것을 슬며시 쥐었다. 크다. 이런 걸 여자에게 하려고 하다니. 슬쩍슬쩍 손가락으로 쓰다듬자 으르릉 거리던 소리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지금이야… 도망쳐… 빨리…” 여자가 일어섰다. 파삭! 뒤로 물러서던 여자가 나뭇가지를 밟았다. “크아아악-----!” 놈이 포효한다, 제길! 재빨리 놈에게 안기다시피 품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쥐고 문질렀다. 놈의 고개가 여자와 자신의 것을 순간, 저울질하듯 본다. “그래… 그래…” 한 다리를 놈의 다리 사이에 밀어 넣고 슬슬 앞뒤로 문지르며 최대한 열심히 만져 주었다. “가릉…가르릉………”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들고 허리를 앞뒤로 흔든다. 끈적한 액이 흐르기 시작했다. 윽…! 더러… 질퍽대는 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손을 움직이는데 놈이 내 엉덩이를 감싸쥐었다. 아, 내가 남자인걸 들키면… 사악------------ 핏기가 가셨다. 들썩이는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 계곡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윽!” 푸욱! 손가락이 항문을 뚫고 들어와 휘젓기 시작했다. 녀석의 것을 주무르는 손이 떨렸다. 뒤로 눕히려 하기에 몸을 비틀자 엎드린 자세로 넘어졌다. 그래도 등위로 타고 오른다. 제길… 내가 남자란 걸 안 들켜야…! 놈이 거대한 것을 쥐고 내 엉덩이 사이를 헤맨다. 제길… 한참을 헤매더니 무작정 민다. 어쩔 수 없다. 엉덩이를 치켜올리고 엉덩이를 버텼다. 놈이 항문을 더듬어 이상한 듯 킁킁댄다. 좋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론은 빠방하다. 첫 상대가 괴물인 게 찜찜하지만 살고 봐야지. 손을 뒤로 돌려 놈의 것을 내 항문에 대자 쿡, 조금이지만 들어갔다. 그러자 “우아악------!” 크, 크다! 뱃속 깊이 쑤시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힉, 히익!!!!!!! 아, 아프다--------! 억지로 뚫어졌다. 살살해! 살살! 뱃속 가득 들어온 것이 앞뒤로 마구잡이로 움직이며 액을 뿌려 댄다. 미끌미끌해지며 강하고 빠르게 악! 악! 으악! 악악!!!!!! 너무너무 아프다------! 놈이 손을 앞으로 더듬어대더니 내 걸 잡았다. “…? 크…크악?” 죽었다 이젠. 확 빠지는 겨를에 바닥에 엎어졌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각오하고 있는데 다시 등뒤로 올라탔다. 잠시 멈추었던 움직임이 갑자기 재기되었다. 흑! 흑! 흑! 불만족스럽지만 우선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내 허리를 쥐고 미친 듯이 쑤셔넣는다. 비릿한 내음이 목덜미로 뿜어지고 있다. 우……끔찍한 냄새다. 거침없이 엉덩이 사이로 파고 들어와 속을 긁고 뽑아내는 포악한 움직임. 순간, 아!? “하, 아아~~?” 놈이 내 신음을 듣고 더 거칠게 퍽퍽 처넣는다. “힛, 히익!?” 쾌감. 죽어도 좋을 정도로 아찔하고 짜릿한. 이론상으로 여길 건드리면 쾌감이 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연습을 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기에 몰랐는데… 굉장했다. 상체를 들어 몸을 젖히자 놈이 어깨를 잡고 받아냈다. 아직 나는 해방이 안된 터라 필사적으로 놈의 허리를 다리로 감아 매달렸다. 계속해! 계속! 제발! 내 부추김에 놈이 물건을 대고 겨냥하더니 단숨에 찔렀다. “아악!” 놈이 떨렸다 전신으로 쾌감이 강렬하게 꿰뚫고 뒤흔들었다. 놈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매달려 흔들었다. 이런 것이 있었다고는 상상도 못했던 종류의 그런 쾌감. 놈이 내 엉덩이를 움켜잡고 깊숙히 찔려 올렸다 아아악-------------! 내 뱃속 깊이 쏘아진 정액이 콸콸 안을 채운다. 나른한 쾌감… 나는 완전히 늘어졌다. 놈의 목을 안고 있던 팔에서 힘이 풀렸다,. 이젠 죽어도 좋아… 눈을 감은 채 킥킥 웃었다. 김동현… 좋겠다? 죽기 전에 소원 성취해서? 놈이 내 엉덩이를 다시 쥐어 온다. 끝을 비집고 넣는다. 아직…? 꽉 힘을 주어 조여 줬다. ……마지막 서비스다. 쨔샤. 정말 원은 없다. 사람은 아니지만 귀신이던 괴물이던 이 정도의 극락을 맛보게 해 준 대가라면 죽어도 좋다. 대만족이다. 그러자 놈이 날 안은 채 엎드린다. “아?” 푸욱---------! 아찔한 통증. 그리고 시야가 폭죽 터지듯 어지러이 폭발했다. 또? 놈이 내 얼굴을 핥으며 미친 듯이 엉덩이를 들썩인다. 내 다리를 잡아 허리에 두르고 흔든다. 다리를 허리에 감아 달라는 거다. 해 달라는 대로 다리에 힘을 주어 허리를 감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놈의 배에 내 것을 분질렀다., 그래… 실컷 하고 죽자. 눈을 감았다. “아아악! 아앗! 아앗!” 놈이 사정이 가까운지 깊게 찔러 넣고 억세게 쿡쿡 파고든다. “히아악----!” 다시 찾아온 쾌감. 나는 비명을 한껏 내지르며 놈의 배에 하얀 정액을 토해 냈다. “흐으…으…” 뱃속의 것이 아직도 힘차게 움직인다. 다시 내 것이 고개를 든다.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쏘아져 채워진다. 역류해 안에서 흘러나온 것에 허리까지 젖었다. 그가 내 정욕을 알아채고 다시 허리를 흔든다. “아응~아, 아아~!” 나는 정신없이 그의 머릴 잡고 입을 맞추었다., 매달려서 놈의 허리를 허벅지로 조이며 등을 쥐어뜯으며 매달렸다. “아윽! 아욱! 아아! 날 죽여줘! 그걸로 더! 깊이, 강하게! 더! 더!” 음란하고 구체적인 지시에 그가 죽일 듯이 치고 들어온다. “히악! 아아악!” 그가 길게 포효를 한다. “우오오오-------------!!!!!!!!” 내가 먼저 사정하고 그가 내 안에 쏘아 넣어졌다. 내 몸은 피투성이가 됐다. 놈이 내 목과 어깨를 씹으며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는 내 안에 있다. 아아… 이제는 더 못해. 그만하고 죽여. 더 이상하면 돌아 버릴 것 같아. 놈이 이리저리 날 뒤집어 가며 계속 하고 있었다. 안은 채 놈이 생각하더니 그대로 안아 일어나서 걸어간다. “아, 아! 아!” 진동에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자 그가 내 허리를 안은 채 위아래로 흔들어 물건을 들숙 날숙 대며 걸었다., 더 이상은 못한다니까아---- 6 > 의문 짹, 짹, 짹-. 새소리에 눈을 떴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짙푸른 잎새로 햇빛이 꿰뚫고 내려와 날 덮치고 있었다. 멍청한 머리로 잠시 그걸 보고 있다가 정신이 들었다. 나… 살아 있었네… 세상에… 벌써 대낮인데 날 아무도 찾으러 안 오냐…? 억지고 몸을 일으키자 뜨뜻한 액체가 허벅지 안을 타고 주르르 흘러나왔다. 주저하며 내려다보자 분홍색이다. 자세히 보자 피랑 정액이랑 섞인 거다. 치질이다. 아니… 그보다. 살긴 했는데 그 놈은 뭐였지. 늑대 인간이냐…? 발을 질질 끌며 별장으로 돌아와 계단을 오르다 맨몸인게 생각났다. 아… 이제 엉덩이도 타겠다. 코고는 소리들을 들으며 조용 조용 욕실로 걸어갔다. 저것들이… 난 죽을 뻔했는데 퍼 자? 문을 잠그고 구석에 앉아 온몸을 박박 씻었다. 팔이 떨렸다. 물을 끼엊은 뒤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가관이군. 목덜미 아래로는 제 색깔인 곳이 없다. 물린 자국, 뜯긴 자국, 할퀸 자국… 온수를 틀어 안을 헹궈 냈는데 피가 계속 났다. 역시 치질이 될 것 같다. 그 여잔 누구고 그 괴물인지 늑대 인간인지 몬스터인지는 대체 뭐냐… 진한 빨강의 트렁크스를 입고 나와 아직도 늘어진 채 퍼 자고 있는 3인조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노려봐도 아무도 안 일어나 지쳐 방 문가에 주저앉아 더듬더듬 담배를 물며 재떨이를 찾았다. 찰칵, 휴우-. 가만히 연기를 보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풋!” 뭐야, 나 한 거잖아. 진짜. 누군 지도 모르는, 정체가 뭔지도 모르는 괴물이랑. 그 자식, 잘하던데? 엉덩이 움직임이 제법이었어. 꼭 몇 놈이랑 한 느낌이야. 도대체 몇 번이나 한 거야 이거? 아직도 얼얼한 아랫도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계속 웃었다. 기가 막혀… 세상에 기가 막혀… 누가 믿을까 이, 이 기막힌 얘기를… 이상하게 조용한 식사시간이었다. 다들 숙취인지 머리를 감싸쥐고 똑같이 기묘하게 꼬리가 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 역시. 나는 숙취는 아니지만. 이 한여름에 긴팔 긴바지니 더워 죽겠다. “일도 다 끝났는데…” 대원이가 입을 열었다. “오늘이 몇 일이냐?” “7월… 아닐까?” TV를 안 본지 하도 오래돼서 다들 중구난방이었다. 오랜만에 TV 스위치를 넣었다. 산으로 들어오기 전과 똑같은 뉴스가 등장 인물 이름만 바뀌어 나왔다. 누가 거액을 횡령했네… 뇌물을 받았네… 물가가 오르네… 세금도 오르네… “골치 아파.” 보다 못해 끄려고 일어나 손을 뻗다가 대원이에게 발로 허리를 채였다. 바닥에 잠시 달라붙었다가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 공금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김강×씨의 신변 확보와… 뭐? - 현재 공항에는 출국 금지 조치가 처해졌습니다. 공금?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공금을? 말도 안돼. 일어나 서둘러 배낭을 들었다. 해, 핸드폰. 도, 돈. 그리고… 옷. 그래, 옷. 또 뭐가 필요하지? 정신없이 왔다 갔다 거리는 날 보면서 셋은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어, 어디 가야 만나지? 만나서 무슨 얘길 하지? 뭘 내가 할 수 있지? 우왕좌왕하자 상권이가 배낭을 뺏었다. “지금 어디 가려고 해?” “…경찰. 경찰서 가면 만날 수 있을 꺼야.” “야. 수배령이 잡힌 사람한테 떨어지냐? 아직 어딨는지 모르는 거야! 니가 거길 왜 가?!” “맞다…” 털썩 주저앉았다. 침착해야 해. 침착… 침착… 침착… - 그 공범으로 보이는 아들 김동현의 소재 파악에… “우와악-!” - 그의 구좌로 수천의 거액이 입금된 것으로 보아… “그거 아파트 뺀 돈이야! 저 앵커가!” 날뛰자 상권이 가만히 보더니 탁, 얼굴을 쳤다. “왜 때려?” “정신 차려.” “나 정신 말짱해.” “그럼 여기 가만있어.” “…서울에 가 볼래.” “네가 간다고 해결이 돼?” “…몰라.” 방에 갇혔다. 내가 죄수냐. 창문으로 나갈려고 했더니 담배를 꼬나문 대원이가 벽 밑에 앉아 올려다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 엉덩이도 아프고 서럽다. 내가 뭘 어쨌다고. …어쨌던 김 비서를 만나야 해. 알아야 해. 내가 해결을 못하더라도 알아야 해, 난.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다구! 의문점이 너무 많아! - PART 2 - 1 > 비 갠 뒤 맑음 비가 내린다. …어째 이상하다. 내리더니 그칠 생각을 안 한다. 창에 달라붙어 창 밖의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고 보고 또 보다 지쳐 동현은 방 귀퉁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덕분에 대원이의 감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이 비를 미친 척 뚫고 나가다 빗길에 미끄러져 산 옆의 절벽으로 실족사는 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꿈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괴물도…. 그 놈 참 쎗지. 응. 정력이였어. 음, 음.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동현을 문틈으로 살피던 상권은 뭐래? 라며 뒤에 달라붙은 나머지 장정들에게 말 없이 자신의 머리 옆에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원을 그려보였다. 밤이 깊어 우는 풀벌레 소리. 처음에 날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엔 뻐꾸기인지 부엉이인지가 울기 시작하더니 졸린 눈을 부비며 버티자 3시 현재 시각인 지금은 사람 숨소리도 들리 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나요-♪ 빠빠빠 빠빠빠 빱빠빠빠빠빠빠 다음에 다시 만나요~” 나이트 장에서 폐점 시간에 익히 들었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창으로 기어 올라갔다. 옛날 같으면 매달려서 꼴사납게 다리를 이지저리 휘저어대고 있었 겠지만 이제 나는 옛날의 동현이 아니다. 창 틀을 잡고, 잡고! 훌쩍 뛰어 배를 창틀에 걸치고, 걸치고! …어어…의외로 높잖아 이게. 게다가 밑에 물웅덩이가 고여있는 걸 보자 웃음이 싹 가셨다. 상권이한테 벽 아래 물이 빠지게 배수로 공사를 하자고 말해주고 나올걸… …그런데 나 정말 여기 뛰어 내려야 해? 정말…? 치거… 찝찝해… 옷은 몸에 달라붙고… 흙탕 투성이인 옷을 벗을까 말까 벗을까 말까 궁리를 하다 아직은 숲이고 나뭇가지가 있으니 긁혀서 다치지 않는 길이 나올 때까지 입고 있기로 결정 했다. 저 귀뚜라미인지 풀벌렁인지를 없애지 않으면 내가 성을 간다. 확 산에 불 질러 버릴라. 물안개가 자욱한 숲이라 전설의 고향을 떠오르죠. 괜히 나왔다 싶죠… 힘내라 동현아 우리의 동현, 힘내라 힘! 불길한 아버지의 상상을 하지 않기 위해 온가지 유치하고 쓸데라고는 쥐방울만치도 없는 생각을 쉴새없이 하며 발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쿠오오------!!!”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등 뒤로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저…괴성은… 돌아 볼 수가 없었다. 쉬익-- 쉬익-- 쉬익--- 가까워지는 짐승의 숨소리. 어깨가 써늘하게 굳었다. 쉬익-- 쉬익-- 쉬익--- 점점 가까워진다. 딱! 나뭇가지가 밟혀 부러지는 소리가 등뒤로 울렸다. 무섭다. 돌아보느니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소리가 바로 뒤에서 멈추었다. 저도 모르게 왼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다. 새빨간 눈동자가 바로 코 앞이다. ----------------- 히아아아악! 피하지도 못하고 그 눈에 쥐어 잡힌 듯 눈을 떼지도 못한 채 돌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쉬익--- 역한 누린 내음이 얼굴에 뿜어져 삼키고 말았다. “씨발… 벗으면 되잖아…씨발…“ 자진해서 벗으려고 했는데 옷이 몸에 달라붙어 바지만 무릎까지 내리고 엎어져 있었다. 바닥에 나뭇잎에 썩어서 진득한게 영 기분이 나쁘지만 살아야 한다. 엉덩이를 흔들며 유혹했다. 그래, 이건 추한 행동이 아니다. 나는 단지 훌라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그래! 엎어져서 추는 훌라 춤! 라라라라, 라, 라라. 라라랄라, 라라라랄~ …… 내 신세야… 흔들리는 겨를에 웃옷은 고개를 팍 숙인 덕에 목까지 올라가고 급기야 뒤집어져 머리에 텐트처럼 씌워져 버렸다. 한참을 흔들자 허리를 붙잡는 털이 숭숭난 손같은 감촉이 있었고 곧이어 허벅지에 묵직하고 뜨거운 게 눌려졌다. 좀 기대가 되기는 한다. 좀 헤매기에 엉덩이를 내려 위치를 잡게 하고 들어오기에 치켜올렸다. 짜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머리를 쳐올렸다. 그 한 번의 삽입으로 나는 절정에 올랐고 놈이 만족하기까지는 괴로웠다. 갑자기 사냥꾼이랑 곰 얘기가 떠올랐다. 총이 빗나가자 곰이 사냥꾼 앞에 와서 하는 말. 너. 죽을래, 한번 할래? 하고… 앤딩이 3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너. 사냥하러 온 거 아니지’… ‘너. 알고 보니까 소문났더라?’…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아니다 아래께 위다. 그 곰인 줄 알고 총 쐈는데 딴 곰이었고 그 곰이 오더니 사냥꾼 손을 꼬옥 잡고 ‘말씀 많이 들었어요’, 라고 했지. 그래서 사냥꾼이 화가 나서 다시 그 곰에게 가서 총 쐈는데 또 빗나갔고 오더니 사냥꾼의 어깨에 턱, 팔꿈치를 짚더니 ‘너. 알고 보니까 소문 많이 났더라?’ 였지. ‘너. 사냥하러 온 거 아니지’는 전 버전이다. 3번째로 빗맞은 뒤에 곰이 와서 속삭이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너. 사실은 사냥하러 온 거 아니지.’ 으으으…나 같아. 이 중에 놈은 내게 무슨 얘기를 해줄까. ‘너. 사실은 도망친 거 아니지.’ 정도일까? 아…푸른 하늘이다. 청간이다. 청간에는 靑을 쓰나 아니면 淸을 쓰나… 눈을 떴다.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모래알로 떡…아니. 밥인가……? 잠시 동현은 현실 도피를 하다 위를 보고 큰 대자로 뻗어있던 몸을 일으켜 추스렸다. 엉덩이 사이에서 허벅지 안쪽을 타고 폭포처럼 내려 쏱아지는 정액에 놀랐다. 몇 인분은 되겠다. 나른한 쾌감에 잠시 그 오싹한 감촉을 즐기다 뒤로 손가락을 넣어 휘저었다. “아앗! 아…아…아…!” 아침 발기라 몇 번만으로도 맥없이 사정을 했다. “후우….” 겨우 욕구를 채우고 눈을 뜨자 휘둥그런 눈으로 서서 날 바라보는 대원이가 있었다. “이 변태 자식아. 내가… 진즉에 니놈이 변태인줄 알아봤다.” “빙신 새끼. 꼭 이 진흙바닥에 도망치고 지랄이냐.” “아침부터 뛰어다니게 하고 지랄이야. 이 변태 놈아.” 셋의 수 없는 발길질에 맞으며 나 변태 아니라… 아구, 미안해… 잘못했어…로 되돌이 표가 붙은 듯이 돌아가며 변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치사하게 샤워도 못하게 하고 땅바닥에 굴리면서 때렸다. 찝찝해에---! 샤워 좀 시켜줘어---! 그 모진 대우에 나는 진짜 도주를 결심했다. 흐윽, 나 신데렐라 같아. 나에게 유리 워카를 신겨다오---! 2 > 세상 밖으로 오랜 만에 세상으로 나오자 날 반긴 것은 박진영의 새 음반이었다. 세상에 여전히 못생겼군. 포스터에 입은 옷도 가관이다. 저게 유행이면 나는 촌놈으로 다닐란다. 재빨리 세 놈을 따돌리기 위해 혼잡한 교보 음반 매장으로 쑤시고 들어간 것 까진 좋았다. 하지만 박진영은 용서가 안됀다. 이 아새끼들도 못 참아. 길이란 길은 다 막고 있다. 너무 많다. 뭐야… 대학 컷트라인을 본다고…?! 켁! 그럼 11월? 그럼 나는 3달이나 더 잡혀있던 건가? 급하다 급해! 달렸지만 어느 전화부스든 다 원천 봉쇄다. 길고 긴 수험생의 줄이 아찔했다.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비장의 카드를 빼어 들었다. 가자! 나의 고향 홍대로! 우선 놀고 시작하자! ‘명월이’ 이름은 이래도 배우들도 득시글거리는 한참 잘 나가는 나이트다. 오랜만에 듣는 프로디지가 날 환장하게 했다. 허리 움직임에 맞추어 나오는 경쾌한 비트. 비트… 테크노 그리고 또 테크노. 그리고 테크노를 압도하는 비트. 그리고 또 뒤섞인 얼터너티브. 미친 듯이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휙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 뭔가가 그것에 부딫치는 챙챙대는 맑은 쇳소리. 리핏, 리핏, 계속되는, 연이어지는 비트. 기타 반주. 다시 드럼 소리. 이어지는 바람소리. 자유를 말하는 숨소리들. 이런 게 사는 모습이다. 이런 게 즐거움이다. 땀에 젖어 머리를 흔들때마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머리칼. 투명한 땀. 크리스탈과 같은 반짝임. 이곳은 현실이다. 괴물 따윈 없다. 단지 괴물은 내 환상일 뿐이다. 있는 것은 단지 머리 속을 뒤흔드는 얼터네티브. 비트뿐이다. 숨 쉬고 있다. 나는 살았다. 이렇게 숨쉬고 있다. 3 > 야수 “정신이 드냐?” 누군가 내 뒷목을 손으로 휘감아 들고 중얼대듯 말한다. 머리가 무겁다. 그런데 왜 내가 누워있지… “머리 좀 내려놔 줘…멀미 나…” “귀엽게 빠졌네…여기도 그러냐?” 손이. 나머지 한 손이 셔츠 사이로 들어와 배 아래로 내려간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놔――!” “싱싱한 횟감이다.” 또 누군가 옆에서 키득대고 웃으며 말한다. 어둡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어어. 가만히 있어. 만 하루는 앞이 안 보일꺼야. 허용치를 초과했어.” 미친… 기억이 난다. 그 세제가루 같은 맛이 나는 끔찍했던 탄산음료. 크윽, 정말 끔찍했다. 주위에서 잘 들 마시기에 억지로 몇 모금 마시고 났더니 주위가 빙글빙글 돌고 피식피식 웃음이 났었다. “그 정돌 마시고 이렇다니. 약은 처음인가?” “보기보단 약골이야?” “이런 녀석이 감이 좋다고. 느껴지냐? 필이 팍, 팍 오는 몸이라고 이거.” 거친 숨이 얼굴에 퍼부어진다. 비린…누린 내. 악몽이 떠올랐다. “씨발…꿈이야 이건…씨발…깨야 해.” 온 몸이 후들후들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렸다. 나가 아무 말도 않으니까 이 모양이지. 내가 이 꼴이 된 것, 누구탓이지? 나? 너? 누구? 누구? 누구? …누구? “쿠아아아악----!” “히익!” “아악!” “뭐, 뭐야 저거!” 주위가 멀어진다. ……누구? 몸이 들려지는 느낌. 와아… 가늘게 실눈을 뜨고 올려다 보았다. 희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잘생긴 나의 늑대씨가 위압적으로 날 내려다 보고 있다. 멋져, 나의 멋진 왕자님. 나의 늑대씨. “아우…냄새…” 그 품속으로 파고 들며 나는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냄새…냄새…냄새 나…” 기분이 좋았다. “흑, 헉! 잠…아우!” 몸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어느새 놈에게 안겨서 아래에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건 애기들 어부바 포즈가 아닌가. 틀린 점이라면 앞에서 앵겨 있다는 점. 그리고 바지가 엉덩이가 까져 있다는 점? 그래서 불편해 필사적으로 어깨 와 등의 털을 움켜쥐고 매달려 있다. 우와… 정신없는 쾌감에 정신을 놓고 필사적으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내가 움직일 때과 놈이 움직일 때가 합해질 때. 나는 따따불로 자지러지는 쾌감을 맛본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견딜 수 없는 크기의 파도가 나를 덮친다. 우, 아아아아―――! 정신이 다시 들었을 때도 놈은 아직도 내 위에 있었다. 달라진 거라면 바지랑 빤쓰가 없어진 거. 등이 바닥에 닿길래 편안하게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당겼다. 아아…! 깊이 들어오는 이 중량감. 슬며시 놈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흔들흔들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놈의 배에 내것이 문질러지며 오싹오싹한 감각이 달린다. “아아…앙…” 내 머리맡을 짚고 있는 놈의 손(?)을 잡아 내 것으로 향했더니 우악스럽게 쥐어 잡고 한번에 아래로 당겨 벗겨냈다. “히익--!” 아, 아프다! 그 앞을 손톱 끝으로 쑤셔 벌리는 자극과 뒤에서 갑작스럽게 치켜 올리는 격함에 그만 사정을 해버렸다. 일 났다. 먼저 사정을 해버리면 남는 쪽이 괴로운데. 예측대로 이미 흥분이 가신 내 위에서 놈은 무식하게 계속 엉덩이를 들썩였다. 할 수 없이 나는 무섭지만 다시 놈의 손을 빌려 내 것을 자극시켰고 놈은 이번에는 내 밑둥을 쥔 채로 계속 틀어 넣어 결국에는 동시에 절정에 올랐다. “으, 으아아아아!!”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이, 이제는 못해! 못 해! 흐윽! 여, 역시 테크니션 늑대…씨♡ 그런데…이제는 그만해 줘어! 그마안---! 4 > Welcome to the jungle 짹, 짹, 짹. 저 참새새끼들을 꼬치구이로 만들어야…. 우우…아구…허리야… 몸을 일으키자 공원이었다. 공원이 맞을까. 잔디가 있고…나무도 있고…저 유리 밖엔 건물도…건물? 켁, 공원 아니다. 여…여기는…내 짐작이 맞으면…. 휘휘 둘러보며 옷을 찾았다. 이제는 나체로 발견되는 건 제발 제발 그만하고 싶었다. 없어. 없어! 내 옷! 내 오오옷---!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절규를 허공에 쏟아내었다. 여긴, 남산 식물원이다아앗! 어떻게 아냐면 저기 팻말에 써있잖아! ‘남산 식물원’이라고! 밖으로 나가면 겨울이지요…입은 옷은 없지요…들키면 변태지요…흐흣, 담배라도 있었으면. 입장객들이 들어오면 이리 도망치고 저리 도망치고 힘들어 죽겠다. 숨을 곳이 없다. 다행이 남아도는 게 체력이라 계속 뛰고 있기는 하지만… 흐윽, 누가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간밤의 흔적이 남아 울긋불긋한 나체로 땀을 삐질 흘리며 표정은 너무나 심각하게 먼 벌치에서 관람객을 발견할 때마다 헥, 헉, 윽, 을 연발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왠지. 이런 날 누군가 보며 웃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상상이 날 불안하게 한다. 몰래 카메라 아닐까? 흐흐흑. 아빠아---. 엄마아---. 상권아---. 하권…이는 없고…갈구기 맨---. 대원아아---. 광호야아---. 동현이 죽는다---. 살려 주----! 문득 그 와중에도 동물원이 아닌 게 어디냐고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더 이상 동물은 시러어엉--! 밤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를 갈며. 옷, 옷, 나에게 옷을…헉, 내 카드!!! 겨우 나는 내 상황을 이해했다. 비자금을 잃어버렸다! 토…통장…주민등록증…여권…돈---!!! 우아아악---! 5 > 결 전! “그르릉…” 기다렸다 이 개자식! 달려가 주먹을 쥐고 들었는데 돌아보며 번뜩, 시뻘건 눈을 빛내길래 얼떨결에 달려가던 기세대로 폭, 앵겨 버렸다. 이, 이게 아닌데.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손아쥐에서 몸을 비틀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굴리지 말고 써야 하는데…으…윽, 잠깐! “말할 줄 알아?” “크르르…” “나는 동현이야. 동현이라구.” “……크르르….” “동현이라니까아~” “그으으…” 크흑, 작전변경. 낮 동안 내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더니 힘들어서 못살겠다. 오늘은 못 해! “배 고프단 말야!” 버럭 소릴 질렀다. 그러자 주춤 하는 기색이다. 설마…알아들었나? “나…배 고파…알아듣겠어?” 배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최대한 애처러운 표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배 고프다구… 히잉~.” 안아들더니 달린다. 그리고 뛰어오른다. 괴물을 타고, 달리는 기분. 앗~싸! 쌍방울 울려, 장단맞추니 흥겨워서 소리높여 노래부른다. 헤이! 동현이. 살려라. 동현이―살려―――!! - 이상 크리스마스 특집 캐롤송 김동현작 - 주위가 휙휙 지나가고 윙윙 바람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오늘 나는 링 귀걸이를 두 개하면 빠른 속도로 달릴 때 위잉-- 하는 공명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휙휙 지나치는 간판들 중에 유난히 밝고 큰 것이 눈에 들어왔다. 파, 팔레스 호텔? 그러고 보니 멀리 비치는 빌딩이 낯이 익다. 으흐흐…. 우리 집. 이미 치운 지 오래인 이 아파트에 왜… 내려 주기에 떨리는 발로 복도를 지나 창 앞에 섰다. 열쇠가…. 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구석에서 먼지에 파묻힌 열쇠를 찾아냈다. 들어와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누르자 쾡한 거실이 나타났다. …그대로다. 아무도 없는지 짐이 없었다. 나는 세를 놓았는데…? 전화가 거실에 달랑 하나. 그리고. 쇼파. TV… 냉장고… 달려가 열었다. 있다! 있다! 나갈 때 그대로 라면 3개가! 다행히 가스가 들어와 끓여먹었다. 배도 차고 해서 화장실로 가 샤워를 하고 방으로 가 농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내내 괴물은 쇼파에 올라 앉아 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더니 내가 옷을 입 으며 리모컨을 집는데 갑자기 으르렁댔다. “좀 입고 있자! 나도 춥다고!” 소리를 빽 지르고 리모컨을 TV로 향했다. “카앙---!” “알았어, 알았다구!” 툴툴대며 다시 방으로 왔다. 오--- 침대. 너 오랜만이다. 바지를 벗고 올라갔다. “그런데 우리 집은 어떻게 찾았어? 내 냄새가 아직도 여기서 나나?” 안기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어보았다. 싸악 싸악 얼굴을 핥는다. 아, 드러. 으악, 냄새. 불빛 아래 본 모습은 어둠 속보다 훨씬 멋졌다. 이런 걸 기른다면 말이지만. 불빛에 반사되는 야광색의 눈동자. 풍성한 갈색의 갈기가 목부터 등으로 이어져 꼬리로 연결된다. 주둥이가 좀 길기는 하지만 희고 날카로운 이가 잘 어울린다. 놈이 내 다리 사이에 엎드려 오기에 밀어낸 뒤 엎어져서 먼지투성이 벼개를 끌어안고 덮쳐오는 잠에 빠져들었다. “난 잘 꺼니까 할려면 빨리 해…” 밀려드는 睡魔수마. 온몸이 물에 젖듯이 나른한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와중에 엉덩이가 들어 올려지고 좌악 벌려지더니 깊숙히 놈이 들어왔다. “으응…” 아찔한 쾌감… 빨리 끝내기 위해 천천히 엉덩이를 앞 뒤로 흔들며 뱃속 깊이 받아들였다. 긴 것은 기차…기차는 빨라…빠른 건… 6 > 대원 딩--동--딩--동--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내 저놈의 벨을…크윽… 욱씬거리는 허리에 간신히 힘을 넣어 엉덩이를 치켜든 뒤 매트리스를 손으로 밀며 겨우 일어났다. “내 여기 있을 줄 알았지.” 의기 양양하게 허리에 손을 대고 말하는 그 얼굴을 한 대 갈겨주고 싶었지만…힘이…힘이…! “어떻게 찾아왔어?” 하필 대원이라니. “내 정보망을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둘째 손가락을 코 앞에 대고 까딱까딱 흔들어 댄다. 어지러웟! 재빨리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늑대씨는 가버렸나? 혹시… 발을 끌려 재빨리 침대 밑이며 장롱을 열어보고 있자 뒤에 와서 말했다. “아주 바쁘시네?” 맞다! 김비서! 돌아와 전화를 찾았지만 불통. 이그, 돈을 안낸지 얼마나 됐지? 핸드폰. 아, 배낭…으으, 내 배낭… 우워어어억 거기에 번호를 다 입력시켜 뒀는데. 내 통장, 내 카드, 내 돈…. “혼자 쇼하고 있네. 빨리 나오지 못해?!” 처량하게 올려다 보았다. “샤워라도…하고 가게 해 주라.” 턱을 치켜들고 내려다 본다. “15분 주겠어.” 개시키. 툴툴거리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혹시 늑대씨가 숨어있지 않을까 했는데 없었다. 도대체 낮에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그 몸집으로 어디에…. “빨랑 씻지 못해!?” 개시키… “아, 아프다…” 샤워줄기 아래서 힘을 빼자 예상대로 허벅지 안을 타고 내려오는 뜨끈한 액체에 몸서리를 쳤다. “으으…에이즈 감염 걱정은 없을까…어째 한 번도 사람하고는 하지를 못하고…” 얼래? 그러고 보니 지금 대원이랑 나 둘뿐이지. 뭉클뭉클 흑심이 피어오른다. 물이 좋은 나이트가 어디더라 딥하우스? 아냐, 거긴 이제 구준엽이 DJ도 아닌데… 벤츄리? 1001? 술만 파니까 분위기로 홀리기가…아냐, 신촌 스팅이 나 홍대쪽 드럭이….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나, 바보 아냐?” 나이트장 가서 뭘 꼬신다고 여기가 침대도 있고 밀폐되어 있는데…! 그, 그런데 어떻게 꼬시지? 나 증~말 사람 남자랑 한 번만 하고 싶… “15분 지났다!” 문이 벌컥 열였다. “아, 아직 옷도 안 입…” 퍽! 주먹으로 머리를 내려친다. 우어우어우어 너무 아프다! 쪼그리고 주저앉아 올려다보았다. 눈물로 시야가 흐리다. 더럽고 치사하고…증말! “뭐야? 그 눈빛은?”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나온다. 김동현. 평생 이런 모욕은 처음이다. “왜 맨날 나만 괴롭혀…. 윽, 윽.” 눈물 콧물 범벅이 되서 좀 봐주지 않을까 올려다 봤더니 사정없이 콧방귀를 뀐다. “재주넘지 말고 1분 내로 옷 입어. 안 그럼 그냥 이대로 끌고 간다.”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누그러진 게 느껴진다. “알았어…” 훌쩍거리며 방의 장롱문을 열었다. 흑흑. 회색의 주머니가 달린 카고 팬츠랑 지퍼 달린 네이비 색의 가디건으로 할까 아니면 훌쩍, 치노바지랑 쑥색 점퍼로 할까. 버버리 셔츠랑 쉐타로 할까? 으음… “아무거나 입어!” 결국 카고에 흰 티랑 점퍼를 걸쳤다. 막 입생로랑의 브라운 정장과 사딕의 후드점퍼를 두고 아까운데 이것도 가져갈까…하는데 대원이 또 소리를 버럭 질렀다. “빨리 하지…! “이 이지오 정장 가질래? 저기 저 프라다 가방이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프라다?” 대원이가 다가와 물끄러미 본다. “꽤 비싸게 주고 샀겠는데?” “가죽 좋지? 이거 이제 절품이야. 없어. 이 브라운 재킷이랑은 스웨이드인데 한 번도 못입어 봤어.” “이 셔츠 어디꺼야?” “사딕. 투톤으로 들어간 블루라서 입으면 꽤 폼 나. 이걸로 여자들 여럿 후렷지.” 갑자기 노려본다. “아, 아니…그냥 밥만 먹었어…” 왜 내가 주눅 들어야 하지? 결국 버버리 여행 가방에서 옅은 노란색 폴로 쉐타랑 끔찍히 아끼던 네이비 바지. 스트라이프의 베스트랑 리바이스 셔츠 두어벌. 엔트로 갤럭시 네이 비 스리버튼 수트 한벌을 도로 빼내야 했다. “이런 양복은 왜 챙겨?” “그냥…” “이사 가냐?!” 흑…결국 여행가방도 허리에 매는 구찌 색으로 바꾸었다. 용량이 작으니까 겸사겸사 담배 케이스랑 시계등을 챙겼다. 아, 나이키 양말도 몽땅. 역시 양말은 나이키가 최고다. 키스톤 워커를 신으며 눈물이 쏱아졌다. 대원이가 걷어 찬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살살 몰아줘…” 허공에 히프를 띄우고 애원했다. 허리에 맨 색을 앞으로 돌려 고치고 안에서 파코의 에너지를 꺼내 차 내부의 허공에 뿌렸다. 아아…과거의 영화여…나의 부질없는 꿈이여… 산산히 흩어지는 오렌지 향을 맡으며 훌쩍였다. “…많이 아파?” “…응.” “……” “…나 아픈 거 어떻게 알아?” “너. 그 싸-한 과일 향이 나는 걸 뿌릴 때는 아프거나 기분 나쁠 때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상권이에게 들었다.” “그래…” 난 또… 대원이가 니가 날 좋아해서 나에 대해 다 아는 줄… “상권이는 어떻게 알았데?” “아---! 운전하는데 정신 사납게! 니가 말했겠지!” “그런가…” 난 또… 상권이가 내게 마음이 있어서 아는 줄… “딴 것도 안데?” 결국 한 대 더 맞았다. 돌아가기 싫은데… 싫은데… 길거리에 음식점이 하나둘 보인다. 지나치는 간판들을 뚫어져라 고개를 돌려가며 보다 말을 걸었다. “대원아아…” “왜.” “나 소원 하나만 들어주라.” “뭐?” “내 평생의 소원 한가지만.” “……뭔데?” “하겐다츠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랑 파파이스 매운 맛 치킨이랑 충무김밥…” “평생의 소원이 많기도 하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대원이는 겔로퍼를 인도로 붙였다. “빨리 사 와. 경찰 나타나면 한바퀴 돌고 올 테니까 여기 서있고.” 주머니에서 5천원을 준다. 짜다. “너는?” “이게 밖에 없어. 기름 넣느라 다 썼어.” 오호라~!!! “으응…” 재빨리 파파이스로 달려갔다. 뒷문이 어디있을까? 내 평생에 전력질주는 고교 체력장 이후 처음이다. 어이구 가슴이야… 우선 이 구찌 색은 80만원이 넘게 주고 샀으니까 홍대 근처 중고점에 가서 팔면 돈이 좀 되겠지. 아부지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갖고 싶다고 애걸한 보 람은 있다. 좀 아깝지만… 양말도 두둑하고… “20만원…” 너무한다. “이, 이거 86만원인가에 샀어요!” “싫으면 말구.” 빌어먹을 영감탱이! 아까워서 머리가 폭팔 할 것만 같다. 20도 지금은 간절하지만 그래봤자 하루 호텔비 7~8만원 3일이면 땡이다. 차라리 여자 꼬셔서 이거 앵겨 주고 몇 일 엊혀 있구 말지. “네.” 색을 잡고 돌아서는데 붙잡는다. “요즘 IMF라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제 값 받기가 힘들어 학생. 다른데 다니며 고생하느니 여기에 맡겨. 에이, 기분이다. 30만원! 이러면 밑지는데… ” 팔을 잡고 있는 턱수염 아저씨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밉다. 여기서 총 꺼내서 강도로 돌변하고 싶지만 권총이 없다. 참자. “50이요.” “학생…IMF다 보니까 워낙~” “그놈의 IMF 소리 좀 고만해요! 지겨워! 지긋지긋해!” 소리를 지르는데 주책 맞게 눈물이 났다. “학생네도…그래?” 손이 떨어져 나가고 짐작이 간다는 눈빛. 눈물을 쓱 훔치고 돌아섰다. “35줄게.” 발을 멈추었다. “그래. 거기까지가 한계야. 학생도 딱한 것 같지만 나는 장사치라서 좀 더 이윤을 남겨야 하는게 속사정이지. 그 정도는 받아야 해. 그리고 그건 내 맘 에 들거든? 내가 갖고 싶어서…” 쑥스럽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으며 담배를 물길래 색에서 티파니 은제 담배케이스를 꺼내 보여줬다. “이거는요?” 눈이 커진다. “파슬 시계도 있는데… 넥타이 핀두요. 이건 듀퐁껀데…살 때 14만원인가 15만원 줬어요.”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의외였다. 부수입이 더 짭짤하네? 처음엔 정말 장물 아니냐고 묻더니 액수랑 산 곳까지 말하니까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했다. 학생…인생의 쓴맛을 어쩌구… 세상이란 모두 내맘 같이 되지는 않는 거야…어쩌구… 해서 힘 내게나로 끝나는데 1시간은 걸린 거 같다. 밥도 사 주길 래 먹고 나왔다. 주머니에 딱 50만원이 채워졌다. 집에 니콘 카메라도 있다니까 나중에 가지고 오면 후하게 쳐준다고 했다. 또 오라구… 또 가긴 뭘 가. 양말만 남아 가벼워진 봉지를 들고 아저씨가 준 (불쌍하다고 자기가 쓰건 옅은 회색의 개그 숄더백을 줬다) 백을 몸에 가로질러 매고 한숨을 내쉬었 다. 이래서 부자가 망하면 3년을 버틴다고 하는구나… 아금 야금 갉아 먹으면서… 다시 한숨. 그런데 돈을 어디다 두지? 카드, 통장, 주민등록증, 여권, 다 없으니…. 주머니 앞 좌우, 뒤 좌우, 양 옆 6개에 나눌까 하다가 그럼 주머니마다 만원짜리라 돈이 많아 보일 것 같아서 양 쪽 옆에 20. 20씩 넣고 왼쪽 앞에 나머 지 5를 넣었다. 나머지 5는 백의 앞 주머니 아래 깊숙히 비상용으로. 위는 양말로 꼭꼭 채워서 꺼내지 못하게 했다. 백을 찟고 가져가면…? …뭐, 어쩔 수 없지. “후우… 돈은 생기는 것 보다 간수하기가 더 힘들구나…그러니 재벌들은 얼마나 힘들까…” 유난히 해가 노란 색이었다. 왜 이래 뒷골이 아프지…? 압구정 뒷골목 호텔(말만 호텔이지 장급이다)로 들어가 침대에 뻗었다. 우선은 자자. 자고 보자. 7 > 침입자 동현이 지쳐 자고 있는 호텔의 창문. 거대한 그 방탄 유리가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리고 턱, 긴 발톱이 창턱을 움켜쥐었다. 곧이어 올라온 것은 육식짐승의 머리와 붉은 눈. 짐승은 육중한 무게에 걸맞지 않게 사뿐히 허공을 뛰어 침대 맡으로 착지했다. 손으로 보이는 앞 발을 들자 손가락만큼이나 길게 뻗어 나오는 긴 발톱. 울다 지쳐 잡이든 동현의 눈가를 긴 발톱이 부드럽게 긁으며 매만졌다. “크르르……크르르….” 자장가처럼 나지막히 울리는 소리에 동현은 실눈을 뜨고 손을 뻗었다. “보고 싶었어…” 울먹이며 야수의 목을 끌어안았다. “안아 줘…” “안아 줘…” “안아 줘…” 샤워기의 물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응?” 내 평생에 짐승이 샤워를 한다는 소리는…… 슬며시 일어나 화장실 문을 빼꼼히 열었다. 갓…. 대원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세상에. 물을 잠그길래 재빨리 돌아와 침대 위에 널부러져 죽은 척을 했다. 대원이는 나와서 날 두들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침대를 지나쳐서…내 옷을 입었다. ….뭐!? 내 옷을 입어?! 난! 내 옷은! 너, 니 옷은 어쩐 거야! 힉―! 내 개그 쌕------! 거기에 내 돈이! 여전히 죽은 척 하는 내 옆을 지나는 대원이. 그리고 문 닫히는 소리. 멀어져 가는 내 키스톤 워커발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나쁜 놈---------------! 이를 득득 가는 내 눈에 전화기가 보인다. 죽어라 잡고 번호를 눌렀다. 조심 조심… 조용한 호텔 로비를 문을 빼꼼히 연 채로 고개를 내밀어 살폈다. 있다. 있다! “여기요. 여기…!” 낮은 소리로 외치자 복도 멀리 등을 보이고 서 있던 양복의 사내가 돌아선다. “도련님?” “빨리, 빨리!” 입을 벌리고 멍청히 안경 너머로 날 바라보던 김비서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온다. “이게 어찌된…?!” “말은 나중에 하고 옷은요?” “여기…” 들고 있던 종이 봉투를 건네기에 받아 재빨리 뒤집어 내용물을 꺼냈다. 바지…바지. 있다. 재빨리 들고 돌아서서 맨 다리에 꿰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제 됐다. 이제 무슨 일이 생겨도 빨가벗고 밖을 나돌아다닐 염려는 없다. 체크 셔츠를 팔에 꿰며 말했다. “아버지는 어떻게 되신 거죠?” “흐응… 해외로요?” 끄덕끄덕. “빨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비밀리에.” “그런데…” 머쓱하니 웃었다. “저… 여권을 잊어 버렸거든요…” 김비서가 말없이 입을 벌린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는다. “정말…인가요.” “네.” 웃으며 손을 들다가 둘 곳이 없어 뒷머리를 긁었다. “…제가 준비를 하죠.” “죄송하네요.” “이곳에 체크인할 때 본명을 쓰진 않았겠죠?” “네.” 나도 그 정도 바보는 아니다. 서류 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 놓더니 종이와 펜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에 싸인을.” “에에…” 뭐지 이건 또. 슬쩍 싸인 위치의 위를 훑었다. - 상기 거래 목적물인 D. C를 양도. 양수함에 있어… 잠시 펜을 든 채로 시간을 끌자 침을 삼키며 김비서가 채근한다. “이거… 물품이 뭐야? 아버지 채권?” “깊이 아실 거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글세… 펜을 놓았다. “여기 보면 모든 권리는 김비서에게 위임되는 거 같거든? 아버지랑 통화하고 싶은데?” 그러자 침묵이 흘렀다. “의외로 똑똑하군.” 여기서 권총만 나오면 진짜 영화 같은 텐데. “네게 가는 0.01%에 대한 얘기지.” “꽤 큰가 보지?” “별 건 아니지.” 그런데 이렇게 성화냐… 얼마냐…10억? 100억? 그래 그 정도겠군. 100억의 0.01이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래도 한참 걸렸다. 시발… 1억 같고 그 지랄이냐. 반포지구 아파트 살 돈도 안 되는데. 세금 떼고 나면… 음… 그래도 꽤 되는데? 아끼면 원룸 하나 사 놓고 느긋하게 유럽 여행 할 돈은 되겠다. 아냐. 그럼 집이 두 채니 세금이… 으음… 그럼 국가은행에 맡길까. 아무리 IMF래도 국가가 떼먹지는 않겠지. 주택은행에 통장 만 들어 놓은 게 있던가. 있다. …윽, 내 인감증명. 위임장. 그래서 엄마 아빠가 가져갔군. “빨리 싸인 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내게서 김비서에게 위임되는 위임장인가 부지?” “알아들으니 말하기가 쉽군.” 이래서 아부지가 숨었군… 돈이 모이는 곳에는 온가지 더러운 꼴이 있으리니… “대신, 아버지가 어딨는지 알려줘.” “좋다.” 기르던 개 주제에 어따 대고 반말 지꺼리야? 오른 손에 억지로 펜을 쥐어 주기에 또박 또박 전액 포기 각서를 쓰고 싸인을 했다. 어차피 아부지가 싸울 테지 뭐… “자, 아버지 어디 있어?” “알면 내가 여기까지 왔을 것 같나?” 그럴 것 같더라니… 서류를 품 안에 넣으며 김비서가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쯧쯧… 돈 몇 천에 목숨 거는군… “돈 좀 있으면 주고 가. 방 값 떨어졌어.” 피식 웃더니 지갑을 꺼내 만원권 몇 장을 던진다. 돈을 하대하면 벌 받을 텐데… 재발리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김비서가 문가에 서서 손잡이를 잡은 채 보고 있다. “왜? 또 뭐 필요한 거 있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무슨?” 시치미를 뗐다. “허튼 수작 한 거면 각오하라구!” 진 개는 짖는다. “그 돈 다가지고 가서 잘 살아.” 손을 흔들어 줬다. 평생 그 짓이나 하고 살라구… 3만원을 쥐고 이걸로 뭘 먹을까 생각하다 피자를 시켰다. 오랜만에 먹는 치즈 크러스트는 입에 짝짝 달라 붙었다. 깨끗하게 먹어 치우고 나자 그만 산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버지가 혹시 날 찾을까 해서 밤까지 기다렸다. 나는 바보가 아니라 숙박명부에 김비서의 이름을 적었다. 내 이름으로 적지 않았으니 거짓말 한 건 아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자고 가기로 마음 먹고 아침에 일찍 떠나기 위해 목욕물을 받았다. 욕탕아. 너 오랜만이구나. 뜨끈한 물 속에 누워 있자니 세상 만사가 귀찮고 지저분해서 이대로 머리나 깍고 절로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으로 올라 가는게 역시 제일 나아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절은 국립묘지 안에 있는 게 전부다. ………… 갑자기 울음이 났다. 배신. 배반.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바보처럼 울음이 났다. 울면 안돼는데 울음이 났다. 무서웠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떠나간다. 꼭 필요한 사람들이 아님에도 혼자라는 게 외롭고 무서워서 울음이 난다. 오늘 뿐이야. 오늘 만 울꺼야. 그러니까…그……그러니까…. 누구에게 라고 할 것 없이 마음속으로 사죄를 하며 내 안의 누구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눈물을 닦았다. 그 빌어먹은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띠리리리리---띠리리리----띠리리리리---- 지독한 두통. 머리 울림. 솟구치는 신경을 누르며 손을 뻗었다. “네…” “너, 언제까지 거기에 그러고 있을거야?” 상권이다. 시발…. 반가워서 눈물이 또 날 것 같았다. “너가 데리러 올 때까지.” “울었냐?” “누가---!” “그럼 나와. 여기 아래 층 로비에 있다.” 황급히 얼굴을 씻고 내려갔다. 아 참. 키, 키. 건장한 떡대의 상권이 손 안에서 키를 꼼지락 대는 내 손을 잡아 키를 뺏어 카운터에 던지다 시피하고 손을 잡아 끈다. “가자.” “……응.” 손이 잡힌 채 밖으로 끌려나왔다. 눈이 부시다. 너무 눈이 부셔서…. “왜 또 질찔 짜고 그러냐…” 상권이 소매로 내 얼굴을 닦아주며 중얼댄다. “씨이…니가 언제 내가 우는 걸 봤다구…” “지금 보잖아.” “대원이가 내 옷이랑 내 가방이랑 뺏어갔어.” 발을 멈춘다. “대원이가?” “응. 어제.” “언제?” “몰라. 아침 같아. 그리고 김 비서가 내 앞으로 된 아버지 채권인가 뭔가 뺏어갔어.” “다 뺏기고 사는구나. 남은 거 뭐냐?” “…없어.” “너가 있잖아.” “…나?” “맨 손으로 시작하는 게 남자의 도리. 질질 짜지좀 말고 그 코 좀 풀어! 코도 질질 흘리고…” “씨이…” 말은 험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옷자락을 바지에서 끌어내 얼굴을 닦아준다. “에이랑 비는 어쩌구 씨만 남냐?” “썰렁해!” “그래 난 썰렁해. 어쩌냐? 내가 썰렁해서? 어쩌면 좋겠어?” “왜 자꾸 화를 내?” “내가 언제?” “지금 화내고 았잖아!” 식식대고 한참을 서로 노려보았다. “내가 말 안하고 도망쳐서 화난 거야?” “당돌하지! 니가 무슨 신창원이라고 그 지랄이냐.” “답답했단 말야.” “우리 셋이서 재미있게 놀아주는데 뭐가 부족해서?” “때리기만 했으면서….” “빨리 타지 못해?” 상권의 코란도에 올라타고 말했다. “배 고파…” “그러고 또 대원이한테처럼 도망치려고?” “그건 알아? 대원이가 옷이랑 훔쳐 간 건 모르면서.” “그건….” 입을 다문다. 이 세상에는 날 뺀 비밀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나도 알 권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묵묵히 있다 속도를 내기에 한마디 던졌다. “엉덩이 아파 천천히 가.” 속도가 더 빨라진다. 미터기를 보자 순간적으로 120 가까이 오른다. “야, 아직 시내야.” 확 올라가던 미터기가 서서히 내려간다. 가슴이 놀라서 발랑발랑 뛴다. “왜 또 화났어?” “화 안 났어.” “그런데 왜…” “화 안 났다고 했잖아!” 구박을 받으니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거기 조수석 다시방 열어 봐.” “다시방?” “으이구---!” 조수석 캐비넷을 열더니 접혀있는 흰 종이를 내민다. “여기 있어, 그 서류” “에…?” “뺏었으니까 안심하고 있어. 아무거나 막 싸인해 주고 그러냐.” 펼쳐보고 김 비서에게 준 서류라는 걸 확인했다. “상권아…” “왜?!” “이거…나 싸인 오른 손으로 했어.” “그래서?” “나 왼손잡이잖아.” 차가 급정거를 했다. 유리에 얼굴을 박을 뻔 했다. 처음엔 화가 난 듯이 노려보더니 서서히 얼굴이 풀어진다. “그랬냐?” “응.”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 손에 쥐어 준 건 김 비서였고 난 그래서 오른 손으로 썼다. 희미하게 상권이 웃는다. “그랬군…” 그리고 날 한 대 때렸다. “그런데 울고 지랄이냐?” “왜……” “시발…. 걱정했잖아.” 정말? 쳐다보자 얼굴이 붉어진다. 귀까지 목덜미까지 점점 더 퍼져간다. “나 좋아해?” 펄쩍--- 뛰더니 머리를 천장에 박았다. “무슨 소리야!” 머리를 부여잡고 불을 뿜을 듯한 화력으로 외친다. “아니…혹시나 해서.” 맞을까 두렵다. 식식대며 발진하기에 다시 물었다. “그럼 대원이는? 나 좋아한데?” 끽----- 이번엔 유리 앞에 손을 짚고 있었다. “이걸 그냥--!” 상권이가 주먹을 치켜들고 휘두른다. 왜… 왜 화를 내고 그래? 묻지도 못 해? 왜…? 한참만에 도착한 곳은 다른 호텔 앞. 역시 상권이는 날 좋아하는… 퍽---☆ “왜 그런 눈으로 봐!” 아파서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왜 자꾸 때려…” “내려!” 상권이를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4층을 누른다. 엥… 방을 벌써 잡았나. 역시 상권이는 날…… 길을 아는지 내리자 마자 오른 쪽으로 꺽어 끝까지 가더니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이 목소리는…설마… 문이 열렸다. “어…엄마…?” 어이구 내 새끼로 시작해서 고생 많았지로 끝나는데 다 맞는 소리다. 입이 한사발이나 나와서 있자 상권이가 주먹을 쥐어 보인다. “아빠는?” “으응…잠시 나가셨다. 곧 돌아오실 게야.” “왜 나만 버리고 갔어.” “넌 졸업을 해야잖니. 니가 친구도 많고 그러니까 잘 해나갈 줄 알았다.” 많긴…다 떨어져 나갔는데. “힘들었나 보구나 이렇게 말라서는…” 마른 게 아니라 샤프해졌다고 해 줘 엄마. “그래, 조금난 더 고생해라. 금방 끝나니까.” “…언제?” “금방.” 내가 애냐 그 말을 믿게. “나만 나두고 또 어디 가 버릴려고?” 그 말에 립스틱 바른 입술이 잡시 벌어지더니 눈시울을 훔친다. “동현아…” “동현아.” 엄마와 상권이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나왔는데 상권의 화난 말투만 들렸다. “나만 놔두고… 어떻게 하라고 얘기도 안 해주고…김 비서가 날…윽!” 옆구리를 맞고 허덕이는데 상권이 팔을 꿴다. “말씀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를 합니다만…” “…그래. 우리 아들네미 잘 부탁하네.” 또 내가 모르는 곳에서 또 다른 음모가! 질질 끌려서 나오며 소리쳤다. “배신자---! 너무해!!! 내 핸드폰 번호 잊지 마요!” 차 안에서 꿀밤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맞았다. “니네 어머니 걱정하시라고 김 비서 얘기는 왜 해! 앙?!” “하면 안 돼?” “…크으…” 치솟아 오르는 화를 누르는지 얼굴이 검붉게 변한다. 그와는 반대로 핸들을 잡은 손은 하얗게 된다. 안돼는 거였나 보다. “알았어…” “……” “…엄마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 왠지 상권이가 식은 땀을 흘리는 것 같다. “김 비서랑 대원이랑 짜서 따돌린 거야?” ――― ☆ “때리는 거 보면 맞구나?” ――― ☆ ☆ ☆ “왜 하나 물었는데 세 대나 때려?” ― ☆ “알았어.”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나 이젠 대원이 못 믿어. 어떻게 문 잠근 내 룸에 들어 왔지, 게다가 옷이랑 돈까지 들고 가 버리고. 와선 샤워만 하고…” 잠깐. …분면 대원이는 내 옷을 입었다. 그럼…? 대원이는 뭘 입고 온거지? 맨 몸으로? 맨 몸…대신 털이면… 알았다! 손바닥을 탁 주먹으로 쳤다. 대원 = 괴물 “그 괴물이 대원이였어!” 상권이를 올려다 봤다. 상권이가 시선을 피한다. “알고 있었어?” “… …” “설마…” “시끄럿――!!!” 버럭 외친 상권이 급정지를 한다. “쓸데없는 소리좀 하지마! 세상에 무슨 괴물이 있다고 그래? 이게 무슨 호러물이냐? 괴물이 할 짓이 없어 너 같은 걸 덮치게!” “…날 덮친 건 어떻게 알았어? 그 얘긴 한번도 안 했는데.” “……” 입을 벌리더니 뻐끔거린다. “대원이가 그런 걸…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나만 따돌리고…” “……” “김 비서는 어떻게 했어?” 엔진이 멈췄다. 주위를 에워싸는 클락션의 울림. “죽였어?” “……” 굳어 가는 턱. 얼굴 전반에 깔린 어두운 그림자. “난 왜 안 죽여? 나중에 죽일 꺼야?” “……” “왜 아무 말도 안…해?” “……” “나 죽일 꺼면…” 잠시 멈추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한번만 안아 주고 죽여 줘.” 천천히 열쇠를 돌리고 시동을 건다. 나직한 울림. 그리고 뒤로 몸이 젖혀지는 발진. 사실은 뽀뽀 해준 뒤에 죽여달라고 하고 싶었다… 9 > 상권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움켜쥐고 그 두 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기다렸다. 철컹― 허리에 수건을 감은 채 상권이 나온다. 천천히 올려다 보았다. 든든한 살집이 잡힌 몸. 천하장사 강호동 같다. 긴 머리를 풀어 갈기처럼 어깨에 늘어뜨리고 다가와 앞에 선다. “널 언제나 보고 있었다. 그 술자리에서 널 본 순간부터.” 사랑 고백? “하지만 널 안기 전까지 난 남자라곤 몰랐다.” 날 안기 전… 날 안아? 언제? “내가 ‘그것’이다.” 머리를 후르륵 터는 몸짓에 지진처럼 상권의 온몸이 떨리고 팟, 부풀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수건. 순식간에 2m가 넘는 신장에 짙은 암갈색의 털이 자라나고 긴 꼬리털이 허공을 휘젖는다. “아…” “크르르…” 붉은 눈. 새빨간, 타오르는 듯 붉은 눈. “늑대씨… 너였어?” 손을 뻗어 만졌다. 이 촉감을 기억한다. 나는… 뒤로 눕혀졌다. 위로 올라온 그가 얼굴이며 가슴을 핥는다. 그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보고 싶었어…” “음! 으응!”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흔든다. 또 애기 어부바 포즈다. 다리로 그 굵은 허리를 꼭 감은 채 들썩거리는 몸을 지탱했다. “더… 더어- 이렇게 살살은 싫어.” 그러자 템포가 빨라진다. “아윽! 아우웃! 아아-!” 저도 모르게 몸이 젖혀졌지만 괴물은 허리를 안은 채 힘차게 밀어 올린다. “아---!” 상체를 뒤로 젖히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별이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 눈을 감기 직전 본 것이 기억났다. 설마… 눈을 떴다. 등 뒤의 창문에… ‘늑대씨’ 가 있다! 그, 그럼 내가 안고 있는 이건…!? 창턱을 긴 손톱으로 부여잡고 훌쩍 뛰어 들어온 것은 역시 늑대씨. 서…설마!? 두 마리-----!? 걸어오더니 날 안고 여전히 허리를 흔들고 있는 ‘늑대씨1’ 을 노려본다. ‘늑대씨1’ 은 날 안은 채 침대에 앉아 허리를 움직이며 ‘늑대씨2’ 를 올려보고 있다. 뭐, 뭐야? 살벌한 분위기에도 이 와중에 계속 흔들리고 있는 나는 뭐야?!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두 ‘늑대씨’ 사이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뱃속에 박힌 것의 끄덕거림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늑대씨2’ 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잡아들려고 한다. “으르르…” ‘늑대씨1’ 이 내 허리를 안은 굵은 팔에 힘을 준다. “아…파…아파―”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러자 ‘늑대씨1’ 이 놓아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날 안아든 ‘늑대씨2’ 가 그대로 뒤에서 밀었다. ―――! 기억에 있는 뜨거움. 이 중량은! 아, 아니. 이 무식한 성격은! 엉덩이짓은?! “너 대원이지! 악! 아욱!” 거칠게 휘둘려져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을 치는 순간 따뜻한 것이 내 것을 감쌌다. …아? 상권이다. ‘늑대씨1’ 내 것을 입에 물고 그 날카롭고 단단한 하얀 송곳니로 가볍게 씹으며 핥는… “으응…” 스르르 긴장이 풀리자 아래에서 쑤욱 밀고 들어온다. “우, 아…!” 머, 멋지다! 이런 건 처음이야! 앞뒤를 동시에 당하는 쾌감에 막 절정에 오른 순간이었다. “쿠워어―――!” 세상에. 늑대씨 ‘No. 3'――!? 10 > 늑대와 함께 춤을 빨간 눈이 제 ‘1’ 늑대인 수령격 상권이. 녹색섞인 야광눈. 찌르기 밖에 모르는 ‘2’ 반항아 대원이. 전신 낼름 낼름을 해주는 봉사 정신 투철한 연보라색 눈이 ‘3’ 인 대광이였다. “빨리 밥 먹어!” 우걱 우걱 덜그럭 덜그럭. 순식간에 한 가득한 밥솥을 비워 낸 셋이 나만 보고 있다. 먹고 살찌워 잡아 먹으려구… 눈물 젖은 밥을 입안에 우겨 넣으며 울상을 지었다. “잔머리 굴리지 마.” “빨리 먹어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으흑… “내가 왜…” “잡아온 여자 놔 주고 엉덩이 들이 민게 너였잖아!” “나한테도!” “나한테도!” 내가 세 마린지 알았나… 그 뒤로 세 놈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늑대모드로 변하여 날 굴리고 있다. “내가 사람도 아닌 니놈들이랑 해서 몸이 배겨 나는 줄 알아――!” 하얀 밥알이 사방으로 튀긴다. 맞은 편에 얼굴 가득 밥알을 붙인 대원이 입가를 실룩였다. “너 오늘 죽었어――!” 팟! 순식간에 늑대모드로 변신. 옷이 사방으로 찢기고 흩어진다. 으악---! 두 얼굴의 사나이!! 나머지 둘도 변신하더니 ‘2’ 늑대의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뭐라고 으르렁댄다. 먹고 난 뒤에 하라는 눈치다. 밥 안 먹어! 팍 수저를 내던졌다. 땡! 땡! 때구르르르………… 왜 저리 소리가 기냐…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진다. “으르르…(좋은 배짱인데?)” “으르르…(이게 오냐 오냐 하니까)” “캬우―――!(해치워!)” “으악---- 꺄악----!!! 아악----!!!” 말 그대로 부모님은 날 늑대 소굴에 내던진 것이다. 외국으로 나간 엄마 아빠가 돌아오는 건 몇 달이 될 지, 몇 년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11 > LAST 이제 나의 똥꼬는 거의 백두산의 백록담 크기까지 늘어난 상태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대사. 두 손으로 마이크를 만들어 입가에 댔다. 저 넓은 산아, 들어다오. “나두 사람이랑 한 번 해보고 싶다아아아-----!!!” 딱---☆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엥?” 동현은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았다. < 끝 > 늑대굴에서의 탈출 ― VIOLINCE 번외 ― 내 이름은 김동현. 아직도 도망을 못 쳤다. 절대로 안 한 게 아니고 못 한 거다. 이건 확실히 하자.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세 껄떠기들은 내가 좋아서 여기에 죽치고 있다고 매일같이 쇄뇌를 하고 주입을 시키지만 단언할 수 있다. 절대로 못친 거다! 세 껄떡쇠들, 저 웬수들. 철천지 웬수들! 내 이 이쁜 방뎅짝이 헐고 똥꼬가 천지암인지 백록담 수준까지 늘어나게 한 주범들! 하늘의…그 뭐냐. 처단? 응징? 아무튼 그런 게 떨 어질 놈들! 으아아아! 아파 죽겠네! 화이구 방댕짝이야―! “또 뭐라 시불대냐?” “지가 머리 굴려봤자지.” “또 창문 넘어갈 궁리 하냐?” “등신 새끼. 하는 것도 맨날 원패턴이야.” “지 잡아달라고 도망치는 시늉만 하는 거 보기도 이젠 지겹다.” 아니?! 대광이까지 합세했다! 저 ×놈의 시끼! 간밤 이리 쪽, 저리 쪽, 쭉쭉쪽쪽 쭉쭉쭉 아양을 떨며 많이 아파서 어쩌지 저쩌지 하면서 온 가지 이쁜 척 은 다하더니 날 밝으니까 나 몰라라다. 두고 보자! 아빠――! 엄마――! 언제 돌아와――! 벌써 1년이 넘었잖아!!! 지긋지긋한 징글징글 징글벨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고 또 여름이 되가는 데 이 꼬라지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내 등이 다 헌 것 좀 봐! 저 무식한 갈구기맨이 날 안아주지도 안고 방바닥에 눕혀놓고 밀어대서 등짝이 다 벗어졌단 말이야! 아파 죽겠어―! “놔!” 상권이가 은근 슬쩍 어깨로 손을 뻗어 오기에 팍 쳐내자 입가가 실룩, 한다. 경련이 일며 다시 한번. 실룩. 깨갱―!!! 우두둑! 손마디를 뚝뚝 꺽으며 한쪽 입가를 비죽 올려 웃는다. 살벌한 눈매를 한 채로. “이…씨이…” “…이? …씨?” “벗으면 되잖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윗도리를 벗었다. 지켜보는 세 놈의 숨이 거칠어지는 게 느껴진다. 변태 새끼들. ×새끼들! 재빨리 대광이가 변신도 하지 않은 채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핥아준다. 다치지 않게 하려고 준비를 시켜주는 건 고맙지만… 덩치가 커지면서 엉덩이 사이에 느껴지던 혀가 얇아지고 길어진다. 그리고 꺼끌꺼끌… 이게 못 견디게 요상한 느낌을 불러 일으켜 날 미치게 한다. 흐어엉~. 나 변태 아 니라니까―. “흑!” 준비도 제대로 안 한 상태에서 급하게 상권이 뒤에서 밀고 들어오자 그 새를 못 참고 대원이 입을 벌리라고 재촉하고 누른다. 그 와중에도 대광이는 내 것을 핥아주고 빨며 편하게 해주려고 온갓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대광이는 맨 마지막이지만 녹초가 되어있는데 시간을 정말로 길게 들여 천천 히 하기 때문에 진을 아예 다 빼놓는다.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들게 하는 상대다. 그, 그런데 나는 언제 탈출하지? 또 눈 뜨면 아침 아냐 이거? 아고고! 살살! 아파 이 짜식아! 포즈가 바뀌고 또 뒤에서 안겨 어부바 포즈가 되니 아예 대광이 늑대 NO. 3는 저 굵은 상권이 허리까지 팔로 글어안고 목 깊숙히까지 내걸 빨기 시작 했다. 쟤는 좀 변태같다. 여기 놈들이 다 변태지만 쟤는 더 심하다. 내 추측에는 대광이는 나 오기전에 나랑 같은 취급을 당했을 지도… 으음…그리고 그걸 좋 아했을 지도…꺄오! “딴 생각 하지 마.” 어느새 대광이가 다시 사람이 되서 올려다 보며 말한다. 내 양 무릎 아래를 잡아 들고 보기 흉한 포즈인데다 다 들여다 보이는 곳을 혀로 싹싹 핢는다. 결합 부위를… 으윽, 그럼 사, 상권이것도 아냐? 아우, 아, 자, 잠깐. 잠깐만. 악―! 너무 금새 해버렸다. 큰일 났다. 나 이제 어떻게 견디지? 젠장, 필사적으로 딴 생각을 해서 버티려고 했는데. 난 몰라 이제! 자기 껄 쥐고 흔들며 대기하고 있는 대원이의 야광눈이 번뜩이는 게 오늘 따라 왜 저리 끔찍해 보일까. 이게 몇 일째야. 이것들이 미쳤나. 밥만 먹으면 또 이 모양이니. 등 아프다. 아파 죽겠다. 위에 타고 올라가 쑤셔대는 갈구기 맨~!(‘펩시 맨~!’과 같은 억양으로 읽어주세요)과 그 사이에 끼어 머리를 들이밀고 여전히 빨아주는 대광이(왠지 짜증나면서도 기쁘다). 그리고 한 켠에서는 속시원하다는 얼굴로 나몰라라 신문을 읽고 있는 상권이(물론, 아주 짜증난다). 이 판국에 너는 신문이 눈에 들어오냐? 어라? 저 헤드라인은…국민…뭐야. 빨리 넘기지 마. 다 읽지도 못했는데. 국민연금이 뭐 어째? 그게 뭐지? 으응 …의료보험 비슷한 건가? 모두들 나를 매스 미디어에서 떼어 놓으니 사소한 기사 하나 하나가 감회가 새롭다. 아…도 닦기는 정말 힘들…아파라… 이 갈구기 맨이 언제까지 하려 고 이러나… 주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주여―! 엎드린 김에 기도를 드리자고 두 손을 꼭 모아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기도를 올렸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이 왠수같은 떨거지들을 떼어내 주세요. …아니, 하나 정도는 남겨놔도…으응…대광이가 젤 착하지만 좀 어둡고…상권이는 너 무 밝고…윽, 그럼 갈구기 맨만 남잖아? 이건 얼굴이랑 몸 빼고는 남는게…우응…궁극의 선택. 딜레마에 빠지지…아니, 시련에 들게 하지 마시 오고… 제게 제발 평안과 안식의 나날을… 그, 그리고 죄송한데 하나만 더. 얘들 말고 딴 애로 바뀌 주셔도 아주 아주 좋아요. 대환영입니다. 키도 크고. 아니, 너무 커도 싫어요. 죄송합니다. 주제에 주문 사항이 많아서. 그리고 이왕이면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 놈…이 아니고 사람으로 부탁 드립니다. 이왕이면 돈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 지금 개털이걸랑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들어주시는 걸로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캄사합니다! 믿―슙니다! …또 부탁할 거 없나? 어차피 기돈데 하는 김에 더 불러볼까? 많으면 그 중에 쉬운 걸로 들어주실지도 모르지. 그래. 저기요. 하나님. 죄송한데요. 있잖아요. 저기… 이왕이면 제가 덩치가 더 좋아져서 이것들을 한 번만이라도 덮치게 해주세요. 그리 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는 게 있으니 받는…아니, 되로 주고 말로 받는…아니, 왜 하나같이 더 받는 얘기지? 아무튼 한 번 복수 좀 하고 싶어요. …근데 이놈들이 오히려 좋아하면 어쩌지? …그건 좀 두렵다… 그리고요 또 부탁이 있는데요. 에어컨 좀 설치하면 안 될까요? 여긴 너무 덥걸랑요? 저번 여름에 땀띠 나서 혼났어요. 청바지 입은 자국대로 허리에 허 리띠 두른 것처럼 땀띠가 나서 내내 뜨거운 물로 샤워 했단 말입니다.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아시죠? 그리고요… 이젠 됐어요. 세 개 같으니까 그 중 하나 정도는 들어주실 거죠? 그리구요 여기 전투모기라고 검정에 회색줄이 알록달록한 독한 모기가 있는데요… 불켜도 인해전술로 막 덤비는데 옷도 막 뚫고 물어요. 혹처럼 막 부 어오르고요. 걔들 좀… 감사합니다. 하나님이시니까 하나 정도는 들어주실꺼라고 믿습니다. “골고루 하네.” 고개를 들자 어느새 멈췄는지 대원이가 내 위에서 땀투성이의 몸을 딱 밀착시킨 채로 히프랑 등판에 달라붙어 들여다 보고 있다. “밥 먹다 말고 기도 드리냐고 했더니 이젠 하다가 말고 기도냐?” “골고루 해요. 골고루.” “냅 둬라.” 간만에 상권이가 신문을 한 켠으로 치우며 말을 하더니 다시 뱉었다. “뒤집어.” …나? 순간, 온 세상이 뒤집어 졌다. “내가 부침개냐! 뒤집으라고 뒤집게!” 텁. 상원이의 두터운 입술이 입을 막는다. 오…우…상권아, 그거 아니? 넌 내게 너무나 벅찬, 섹쉬―한 입술을 가지고 있단다. 그러니까… “푸――! 숨 좀 쉬자! 가뜩이나 힘들구만!” 뒷목을 두터운 손바닥으로 턱, 잡더니 간신히 자라고 있는 내 솜털을 쥐고 머리를 고정시키더니 다시 도킹. …우……! 음왕으으이오. 응이이으가…맞다. 입은 막혀도 생각은 제대로 나오지? 있잖아요. 엄마 아빠, 얘들이 나 잡아와서 머리 박박 밀었어요. 주민등록증도 없 고 머리도 빠박이면 탈주병이나 탈옥범으로 오인될 거리고. 흑…이제 겨우 좀 자랐는데 이게 얼마나 웃긴지 아세요? 꼭 병아리 머리통 같아서 내가 보 기에도 기가 막히고 한심해서…허허……내가 머리카락이 좀 가는 건 알지만 길면서 약간 곱슬곱슬해지는 기미가 보이니까 어째 중삐리 같은게…교복 만 입혀놓으면 딱이라니까요? 미장원이라도 가서 좀 다듬고 싶은데…으흐…싫어―이건 내 미적인 감각에 너무 안 맞아―! 이 머리꼴은 싫어――! “뭐라고 옹알옹알거려?” 상원이 젖은 입가를 훔치며 투덜댄다. 울상을 짓고 올려다 보자 혀를 쑥 내밀더니 입을 벌리고 도킹 시도. 고개를 숙여 오는 그림자에 아찔해진다. 아…난, 봐 버렸어. 상권이. 충치 있다. “학! 하! 아악!” 못 견디겠다. 죽겠다. “그만 해…그만…” 눈물이 눈가에 맺혀났다. 힘들어 죽겠다. 돌려가며 하니 셋이서 몇 번이나 하는지… 힘이 넘쳐나면 유리창이나 닦을 것이지. 담배진에 찌들어 유리색이 갈색인데 도대체 언제 닦으려고… “진짜야. 나 힘들어. 그만…” 필살 애교.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아래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늑대 No. 2 대원이가 잠시 얼굴을 야광 눈동자로 내려다 본다. …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더니 이거. 고양이 눈 색깔이다. 깊이 있고 홍채 주위에 보석처럼 금색이 섞인 초록. 보석같다… 이쁘다… 움직이더니 허리를 고쳐 안는다. 그리고… “아욱!” 힘껏 눌려졌다. 놀라서 양 발이 치켜 올라갔다. 깊숙이 들어온 감각. 저릿 저릿 달리는 쾌감. “으…응!” 굵은 털투성이 허리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를 감고 온힘을 다해 매달렸다. 가까워지는 절정에 필사적으로 등의 털을 부여잡고 허리를 폈다. 아…아아! 조금만 더! 경련과 함께 하체에 퍼지는 아득한 절정. 멈추지 않는 힘찬 움직임. 이기지 못하고 대원의 어깨에 이를 박았다. “캬악―!” 거칠게 대원이 짓누르며 하체를 부딪친다. 절정이 끝나가다 다시 이어진다. “아아아아―!” 긴긴 사정. 늘어진 채 헐떡이며 가슴위에 온 무게를 실고 엎어져 있는 대원의 심장 고동소리를 느끼고 있었다. 움찔, 움찔. 아직도 안에서는 작은 경련이 인다. “한번 더.” 이것들이 미쳤나? 짜증이 난다. “왜 또 신경질이냐?” “또!? 내가 언제 신경질 냈다고 그래!” “지금 신경질 내잖아!” “내가 언제―!” 괜시리 치솟는 것에 주먹을 들어 대원이 얼굴을 그대로 갈겼다. 정통으로 먹혔다. 나중에 맞아 죽을 걸 알지만 당장은 속 시원하다. 바닥에 길게 뻗어 피랑 눈물이랑 콧물로 엉망이 된 채 꼼짝도 못하고 질질 짜며 운다. 지금 나는. “씨발…” 아파 죽겠다. 씨발… 진짜루 아프다… “왜 또 질질 짜냐…” 대원이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 보며 안됐는 듯이 중얼거린다. 밉다. …… 좋은 생각이 났다. 번뜩이는 채치. 이 얍삽함. 세상은 잔대가리로 사는 건 아니지만 못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순간이 있다. 타겟은 만만한 대광이다. “대광아…” 설거지를 하는 대광이 옆으로 가서 되도록 처량한 얼굴로 가서 어깨에 기대섰다. “응? 왜 그래? 그 얼굴은 또 뭐야?” 손을 늦추고 보더니 다시 손을 씻고 턱과 뺨을 조심스럽게 잡아 들여다 본다. “상권이? 아니…그 놈이면 이렇게 끜나진 않았을 테니. 대원이?” 말없이 고개를 슬그머니 숙였다. “……많이 아프냐?” “…아니…” “기다려 봐.” 화장실로 날 듯이 뛰어가 뭔가 들고 온다. “이 잘생긴 얼굴 엉망이 됐네…미남 체면에 말이 아니구나…” “내가 잘생겼어?” “…응.” 좋다. 기쁘다. 우와. 해피 아이엠. “좋아?” “응.” “그래, 웃으니까 이쁘잖아.” 그 말에 얼굴이 굳었다. 나…계속 인상만 쓰고 다닌 걸까? 왠지 죄책감이 든다. “계획 취소.” 입안으로 중얼대는 말에 대광이가 갑자기 이마에 갈매기 무늬 주름을 잡는다. “너… 무슨… 또…?” “아냐, 탈출 하려던 거.” “그럼 뭐야?” “응…그…대원이가 하두 때려서 화가 나서…나…누구한테 애인 비슷한 거 하면 걔한테는 안 맞을 거 같아서…생각하니까 대광이 너가 제일 착해 보이 고 잘 해주니까 나 애인 삼아 달라구 그럴라구 그랬거든. 근데 그럼 셋이 사이도 벌어지고 싸우고… 내가 바란 게 그거긴 하지만…어째 그러기가 싫어 져서.” 대광이가 묵묵히 바라본다. 아…내 키가 큰 건가? 작년처럼 올려다 보지 않아도 된다. 신기하다. 대광이가 여전히 보고 있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건가. “말 끝났어.” 그래도 아직 쳐다보고 있다. “끝났다니까?” “…해도 돼.” “………응?” “내 애인.” “……뭐?” “내 애인. 해도 됀다구.” “…아니, 나. 사랑…어…거 말하기 쑥스러운 단어구만… 거. 거시끼니…뭐시냐… 그…감정 있잖아. 그… 서로 죽고 못사는 그거 있잖아. 그게 있어서가 아니라 대원이 미워서…” “상관없어.” “…에?” “너가 필요한 건 애인이고. 나는 내가 너 애인이 되던. 너가 내 애인이 되던 좋다구.” “…둘 다 같은 말이잖아.” “달라. 내가 너 애인이 되어 준다는 건 너가 입장이 아래고. 너가 내 애인이 되어 준다는 건 반대야.” 그럼… “그래. 지금 말하는 거지만…” 못 들을 걸 듣게 될 것 같다. “너가 좋다.” 들었다. 폭풍 전야의 고요한 전조. 그게 예감이 든다. 내 나쁜 예감은 언제나 맞아 떨어진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계획한대로 될 것 같다. 나는 나쁜 놈이 되고 우정이고 사랑이고 갈갈이 찟겨나가는 보기 흉한 3류 멜로 드라마 같은 3각 4각 5각에 불륜에 기타 등등 진행되다가 주인공은 불 치병이나 외국 유학으로 끝나는. 부모님이 외국에 있으니 다 뽀작내고 괴로워 죽으려는 상황에 전화가 오겠지? 그리고 난 떠나는 거야. 잘한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피리 불고~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걸 현실 도피라고 하나? “농담이었어.” 대광이가 빙긋 웃는다. 아, 어깨에 힘이 쫙 빠졌다. 깜짝이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대광이가 지나친다. “잘 생각해 봐. 나쁘지 않는 조건이니까.” ……에? 돌아서자 이미 대광이는 안 보인다. 설마…말하고 바로 달려나간 걸까? 여기서 현관까지는 어림잡아 3초는 족히 걸린다. 그럼…달려가 버린 거야? 내 대답도 안 기다리고? 아냐, 이건 대광이가 날 괴롭히려고 생각해 낸 새로 운 기술이야. 맞아. 그래. 그럴 거야! 그렇다면 대광이 예상은 적중했다. 밥 먹을 때가 돼도 나타나지가 않는 대광이 덕택에 썰렁한 공기의 테이블에 앉아 나는 밥이 목에 걸려서 체했으니까.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 더니. …아니, 거꾸로였나? 썰렁한 공기. 썰렁~ 썰렁~ 썰렁~. 속이 쓰리다. 위장병 걸릴 것 같다. 나는 지금 변기에 얼굴 박고 토하고 있다. 목안 깊숙히 걸려 박힌 내 감정같은 토사물 찌꺼기들. 더러운 느낌. 더러운 감정. 더러운 상황. 이 와중에 설사도 마렵다. 미치겠다. 자세를 바꿔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고개는 옆 세면대로 돌렸다. 소리, 죽인다. 입안에 배인 소금치약 맛을 소매로 훔치며 화장실을 나서는데 상권이가 문 옆에 기대 서 있다. …무섭다. 무슨 일로 또 저렇게 폼을 잡고… “대광이가…” 뜸들이지 말고 불어라. 내 섬세한 심장이 터질려고 몸부림을 친다. “없어진 거랑.” 그래. 내가 했다. “너랑…” 내가 했다니까! “……” 돌겠다. 또 쏠린다. 돌아서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려는데 팔을 잡는다. “도망치지 마.” “있어?” “……그냥 죽여.” “…뭐?” “내 피를 말리지 말고 죽이라고.”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거냐?” “너 그런 놈 아니잖아?! 빙빙 돌리지 마! 내가 더 미치겠어! 대놓고 물어 봐!” “뭐라고 했냐.” 너무 길게 대답해야 한다. 나는. 그 긴 과정을 짧게 말하기가, 설명하기가. “삼각 관계.” 아니다. “짝사랑.” “……” 됐다. 다시 들어가려는데 안 놓아준다. “누가 누구랑 삼각이고 왜 삼각이냐. 사각이면 사각이지.” “사가악―?!” “우리 셋. 너. 모두 해서 네명.” 설마… 상권이가 끄덕인다. “몰랐다고 말하면…” ‘그냥두지 않겠다’ 지. 안 들어도 알겠다. 과연 내가 알고 있었을까? 뭘?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잘랜다.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눈뜨기가 무섭다. “그럼? 애를 질질 끌고 나타났는데, 내가 구경만 해야 돼?” “이게 애로 보이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역설이라고 하면 좋겠다. 생각하자마자 시끄러워지냐… 다시 잘랜다. 들으면 더 무서운 걸 알게 될 것 같다. 빨리 자자, 빨리… “내가 데리고 왔다.” …역시… “그래서? 니놈이 지금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냐?” “이 집 소유가 누구지?” “나가도 데리고 나간다!” 갈구기 맨…넌 역시… “누가 제일 먼저 찍었는데!” 나…인기 디게 좋구나… “안은 걸로 치면 내가 제일 많이 안았어!” 펄~펄~눈이 옵니다~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지랄 마!”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죽을래!” 송이송이!! 하얀 눈을―!!! 우당탕탕― 에휴…자는 척 하기도 지겹다. 세 여자도 아니고 세 남자가 이게 뭔 지랄이래… …어? 그런데 왜 입가가 이렇게 올라간다냐? 의외로 디게 재미있다. 나를 놔두고 싸우는 상황이 왠지 두려우면서도…어? 기쁘기도 하네? “저 자식! 웃고 있잖아!?” 갈구기맨…넌 역시… 눈을 뜨고 웃어 보였다. “어어…이거 쑥스럽구만…” 머쓱하니 머리를 긁어 보였는데 안 먹힌다. 왠지 맞을 것 같다. 맞지는 않았지만 두 새끼가 변신해서 날 잡고 당기고 싸워서 그 발톱에 여기저기 찢어져서 피투성이다. 그리고 도중에 들어온 대광이가 날 치료해 주고 있다. 일부러 그러는지 아주 천천히, 아주 아주 천천히 소독하고 붕대로 감아준다. 시뻘건 속살이 찢어진 피부 밖으로 튀어나와 영 보기 흉하지만 꿰매는 건 모두가 자신없어 해서 가장 심한 어깨만 남기고 보류중이다. “병원으로 갈까?” 아까부터 상권이가 차 키를 손안에서 주무르며 쩔걱쩔걱대서 딴 데만 봤다. 쟤다. 이렇게 만든게. 상권이도 딴 데를 보며 말하고 있다. “내가 꿰매지 뭐…” “니가 니 어깨를 어떻게 꼬매냐?” “오른 손인데 뭐. 다친 건 왼쪽이고.” 그러는 동안 대광이가 바늘을 라이터로 달구고 있다. 갈구기 맨이 뒤에서 허리를 팔로 끌어 안는다. 피부가 이렇게 질긴지 처음 알았다. 게다가 바늘이 들어가는 것까진 어떻게 어떻게 했는데 실이 빠져 나오는게 더 아파서 죽을 것 같다. 하얀 실이 새빨갛게 젖고 살점이 뭍어나 쏠린다. 그리고 바늘귀가 한 꼬 꿸 때마다 속살을 쿡쿡 찌르고 있다. 왜 의사들이 휘어진 바늘을 쓰는 지 알겠다. “그만 봐.” 대원이랑 내가 들여다 보고 있자 대광이가 바늘 쥔 손가락을 부들 부들 떨며 억눌린 소리를 낸다. 비져 나온 시뻘건 속살이랑 누런 비계를 안으로 눌러 억지로 쑤셔넣는다. 꿰맨 걸 보니 가관이다. 진짜 발가락으로 꿰매도 이것 보단 낫겠다. “악――!!!” “아고…!” 마지막 매듭 지을 때 찟어진 피부 귀퉁이를 통채로 묶어서 묶인 걸 빼내려고 당기다가 실이 피부를 찢어냈다. 피부가 걸레처럼 너덜너덜 해졌다. 내가 아파서 우는 동안 다시 처음부터 꿰매기로 결정이 났다. 이번엔 서로 해보겠다고 싸운다. “나 그냥 병원 갈래!!!” “어어…이거 얘기랑 다른데…” 의사가 붕대를 풀어보더니 표정이 굳는다. 난 처음에 여기 기계 정비하는 아저씨인줄 알았다. 셋이 간호사 누님한테 설명을 하는 동안 한달은 안 빨아 입은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면서 귀퉁이에 있길래 기계 고장나서 고치러 온 건가 했더니 설명이 끝나니까 장갑을 끼는 거다 글쎄. “이걸 어떻게 하라고? 지그제그로 다 찟어져서 너덜너덜 거리는데.” “아, 대강 대강 해.” 세상에 저 아저씨도 의사였어? 청소부 아저씨로 생각했던 수염이 한명 더 추가로 왔다. “그러지.” 바늘을 든다. 그리고 어깨를 잡는다. 그리고… “악――!” “아, 마취 주사 잊었다.” 의사 실력도 별 것 아닌지, 완성되고 소독할 때 보니까 흰 실이 검은 실로 바뀌었다 뿐이지 결국 대광이랑 비슷한 솜씨였다. 아, 한 땀 꿸 때마다 매듭을 지어 묶고 또 묶고 하는 것도 다르긴 했다. 그러니까 헐겁게 꿰매었다고 다시 당겨도 통채로 줄줄이 찢어지지는 않았지. …열 나고 아프고 죽겠다… 주사 놓고 얼음 주머니를 대주길래 좀 괜찮았는데 마취제 떨어지니까 다시 아프다. …안 아프다 다시 아프니까 더 아픈 거 같다. 병실 밖으로 나왔다. “누나…저기… 약 좀…” 정비공 아저씨를 본다. “아저…의사 선생님 약 좀 주세요.” “오늘 저녁에 열 나고 좀 아플 테니까 듬뿍 주사 하죠.” 네. 제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에요. …에게? 겨우 이거야? 덧나지 말라고 맞힌 주사는 무지하게 컷으면서 아프지 말라는 주사는 새끼 손가락의 반의 반도 안돼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주사기다. 몆 방울이냐 저게… 다행이 맞고 나니까 온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졸렸다. 잘됐다. 세 놈다 병실이 오지 못하게 해서 오랜만에 푹 잘수 있겠다. …에? 그럼 탈출 가능한데 자, 잠깐 누나. 취소. 주사 취소… 나 나가야 하는… 밤중에 일이 터졌다. 또 아파서 자다가 울었더니 누나가 몇 번 와서 보더니 나중엔 의사가 와서 그만 좀 울라고 주사 맞히다가 엉덩이 상처를 봤다. …더 정확히는 그 사이… 피가 좀 났나 보다. 치질이랜다. 것도 안에 상처가 있는 거랑 밖에 있는 거랑 둘다… 오밤중에 항문과로 보내졌다. 그리고 아예 모든 상처가 다 들통이 났다. 알고 보니까 나아가는 상처까지 하면 50개 가까이 됐다. 처음엔 폭력조직 쯤으로 생각하더니 나중엔 학대받는 뭐시기…정도로 생각했는지 자기들끼리 회의를 한다. 나? …나는…사실대로 불었다. 왠지 몰라도 묻는 거에 다 말하는 분위기였는지 약기운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물어보니까 나한테 맞힌 주사가 안정제라서 그러니까 괜잖다고 그랬다. 그럼 자자. ……… “아악――!!!” “앗, 미안.” 통증. 머리끝까지 치솟는 통증. 격통. 바들바들 떨며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내 머리 위에서 들리는 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개시키! 어뜬 시키야! 간신히 고개를 들자 갈구기 맨이다. 역시 너냐…! 겨우 겨우 잠이 들었는데 정신이 들자 지옥이다. 자는 동안은 아프지 않아 좋았는데 정신이 들자 반겨준 것은 이 아픔 뿐이다. 병원이라 안심했는데 깨보니 다시 산속 으앙―. 멀쩡한 오른 손을 들기조차 무섭다. 겨우 겨우 손을 들어 머리 맡의 약봉지를 짚었다. “빈 속에 먹냐?” 뺏겼다!!! “아파 죽겠…!!!” 소리 지르니 상처가 울린다. “끄으으으……” “가관이구만.” 뽕짐은 그래도 좋은 그…그거라도 같이 뒤섞이지만 이건 100% 순수한 절규만이 나오는 악몽이다. 아프다. 아프다. 아파―! 이렇게 아픈 건 정말 태어나 처음이다. 너무, 무식하게 아프다. “기절 시켜 줄까?” “밥 먹고 패라.” 상권이가 거든다. 죽여라 죽여! 니네 애인 죽지 내 애인 죽냐?! …아, 나 애인 맞나? …그래. 4각 관계니까 애인 비스끄레한 거라도 돼겠지. …딴 생각을 해도 여전히 아프다. 아프기만 한 게 3일째. 이젠, 인생을 포기했다. 이 통증은 언제 가시려나. 셋의 얘기를 들어보니 발톱에 독이 있어 한 달은 간다고 한다. 전엔 안 그랬는데 이번엔 그런 이유가 화를 내면 독 성분이 손톱에서 내뿜기 때문이란다. …핑게도 좋다. 내 생각에는 일부러다! 내가 넘버 3랑 사귄다니까 이 자식들이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아니야 이거~. 말이야 말이야. 감, 잡았어~. 나. 감이다. 넌 뭐냐? 내 생각에도 난 미친 거 같다. 제정신이면 이런 생각 못할 거다. 탈출은 보류다. 다 낫고 보자. 지금이 도망치기에는 경계가 허술해져서 좋을 수도 있지 만 몸 고달픈 건 싫다. 싫어――! 7일 경과. 좀 괜찮다. 여전히 대원이가 잘 때 날 밟고 다니지만 않으면 더 좋겠다. 그나마 잘 해주던 대광이가 쭈뼛대며 눈치를 보고 왔다갔다 거리고 멀찍이서 머리만 내밀고 있고 이 세놈이 내 주위를 형광등 처음 본 불나방처럼 정신없이 맴돌아 어지러워 죽겠다. 8일 경과. 역시나. 아랫도리가 푹 젖어 있지만 화장실 갈 기력이 없다. 좀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세 놈이 너도나도 다 달려들어 허리 아래가 미끈 미끈. 찜찜하다. 내키지가 않아 한 번도 나는 하지 못해 몸만 뜨겁고 미치겠다. 대광이가 다리를 꼬며 몸을 비틀자 고개를 숙여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아~ 와아~. 겨우 겨우 끝내고 싹 싹 핱아주기에 다리를 벌린 채 방심하고 있자 눈을 번뜩이며 몸 위로 올라온다. 흔들 흔들 흔들리는 내 다리. 이미 올라간 경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느낌. 아니, 내려오지 못하는. 내 나이 스물. 인생의 쓴 맛을 골고루 맛보며 쾌감의 꼭대기에 몸부림 치고 있다. 이제는 날짜도 세길 잊었지만 나느 여전히 도망 갈 궁리를 빼놓지 않고 여전히 하고 있다. “아…거기 말고 좀 더 아래.” 서툰 자식. “응…거기, 거기. 좀 더 세게.” 아…시원하다. 오랜만에 목욕을 했더니 덜 벗겨졌는지 온 몸이 근지럽다. 시원하게 때를 벗겨낸 뒤는 역시 맥주가 최고다. 등을 대광이에게 맡기고 응,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맥주 캔을 기울였다. 무료하고 나른 한 새벽. 덮치는 걸 잽싸게 피해 목욕을 하고 나오자 두 놈은 이미 잠이 들어 이리저리 대광이의 요구를 흘러들으며 맥주를 기울이고 있다. 왜냐면 이거 다 마시고 나면 하게 해 준다고 협상했기 때문이다. 징한 대광이는 술에 탄 약을 안 먹었는지 혼자 또릿또릿하다. 아…도망쳐야 하는데 오늘도 실패인가. 낼 깨어난 둘이 머리 아프다고 화내며 내 공작을 눈치채고 날 죽어라 쑤셔댈텐데… “대광아…” “응?” 눈을 빛낸다. “나두 한 번만 해보면 안될까?” 한참을 생각하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어깨너머를 가리킨다. 끄덕였다. “…대원이는 어때?” “나중에 지랄할텐데.” “…으응…” 고민하는 눈치다. “나, 아직 앞은 아직이걸랑…니가 해주면 안돼?”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속아주는 눈치다. “그…러지 뭐…” “정말?!” 신난다. 오랜만에 몸 좀 풀겠다. 까무잡잡하고 약간은 마른 대광이가 옷을 벗고 엎드리더니 중얼댄다. “보지 말고 해.” 어떻게 안 보고 하냐? 위에 숫가락 두 개를 포개듯이 엎드려 슬며시 하체를 밀착했다. 야아…흥분됀다. 미끄럽게 들어간다. 와, 조인다. 한참을 애써서 간신히 넣었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기분이 좋다. 따뜻하고, 촉촉한 것이 날 감싸고 탄력있게 조인다. 힘겹게 밀어넣고 밀어넣다 허리가 아파 쉬었다. “힘들어?” “조금.” 땀투성이가 되서 헐떡이자 몸을 빼내더니 가슴을 밀어 눕히고는 위에 섰다. 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갸우뚱하니 고개를 돌리고 눈을 흘긴다. 그리고 위에 올라가 내 양 어깨를 잡고 허리를 내린다. 꺄오! 단숨에 감싼 직장이 날 잡아 조이고 당긴다. 나보다 더 덩치가 큰 녀석이 이렇게 귀여울 줄은 몰랐다. 허리를 안고 체중을 더 실으라고 하자 시선을 머뭇머뭇 피하며 하라는 대로 한다. 꽈악 조이며 뿌리까지 삼킨 것이 쭈욱쭈욱 잡아 뽑듯이 쥐어 당긴다. 아찔한 쾌감. 처음이다 이런 건. 너무 흥분이 되서 머리가 멍멍했다. “뭐 해?” 으악! 놀라 화들짝 보는 동안 어느새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보던 상권이가 내 등을 밀어 대광이를 안은 채로 앞으로 엎어졌다. “흐으…악!” 그대로 뒤에서 쑤셔넣어졌다. 뻑뻑한 터라 찌릿, 아픔이 등골을 달려가지만 무시하고 뒤에서 거칠게 움직인다. 그 바람에 바닥에 깔려있는 대광이가 신음을 흘리며 내 어깨를 매달리 듯이 붙잡는다. “아, 아앗, 흐윽!” 대광이의 흥분이 전염된다. 이런 걸 SM 플레이라고 하나? 여…역시 대광이 너, 나 없을 땐 니가…! 아침에 노곤하게 퍼져 있는데 먹을 걸 먹여주던 대광이가 묻는다. “그런데 너는 학교 안 가?” “학교?” 무슨… “대원이랑 상권이랑은 시험 본다고 아침부터 나가던데?” 뭐가 있어도 시험은 봐야 한다. 여긴 한국이니까. 성적은 곧, 능력이다! 남자의 능력은 돈이 얼마나 있냐, 얼마나 버냐고 여보자기 앞에서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는 거라는 걸 울 아버지의 교육으로 뼈져리게 알고 있는 나다. 돈을 많이 벌라면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갈라면 성적이 좋아야 하고, 성적이 좋을 려면 시험을 잘 봐야 한다아아――앗! 라는 얘기로 대광이에게 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선일아, 보여 줘! 보여 줘!” 옆자리 선일이에게 발버둥쳤으나…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형…나도 모르겠어…” “절망이다…!” 앉은 채 발을 동동 구르며 머리를 책상에 박았다. 세상에, 벌써 시험이라니! 벌써 개강이라니! 세상에! 왜 난 몰랐을까?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우짜나? 이 일을 우짜나?! 베팅―! 그래, 그것만이 남은 나의 길이다. 저 이상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완벽한 확신이 든다. 그렇다. 한 탕 주의.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기개가 아니던가? 좀생원처럼 야금야금 갉아가는 건 내 직성에 맞지 않는다. 오로지, 한 탕. 한 탕 만으로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한 번에 왕창 벌어 모든 빚과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생각 끝. 이제는 실천만이 나의 길이다. 손을 쓰윽 선일의 시험지로 뻗었다. “학생…” 꺄울――!!! 들․켰․다. 컨닝도 해 보던 놈이나 하지, 이건… 으흐흐…이제 난 어째… 어째?! 콰당! 뒤에서, 여러군데서, 쾅쾅거리는 울림이 있고 왠지 모를 위압감과 기백이 내 어깨를 타고 올라와 날 누른다. “너, 여기서 뭐하냐?” “가자.” 대원이와 상권이가 나란히 내 팔을 꿰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둘에서 양 팔을 들려서 공중운반되었다. 슈퍼맨~~~! “이 빙신아. 너 작년에 졸업했어” “정신이 그렇게 없냐.” 앗! 맞다! 나. 졸업했다! 세상에! 그대로 있었으면 교수한테 들켜서 얼마나 비웃음을…그 많은 아그들 앞에서 그 혹독한 시련을 격었을까? 아…생각만 해도 아찔… 체위를 바꿔 머리와 다리를 각각 들고 거의 마하 속도로 둘이 달린다. 고맙다고 해야할지… 무섭다고 해야할지…왠지 슬픈 것 같기도 하고…좀 즐거운 듯한 이해 못할 감정이 눈에서 쏱아진다. “병신 새끼…” “내가 니가 변태인 줄은 애저녁에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로 저능아 인 줄은 정말 몰랐다.” 머리를 잡은 상권이가 계속 쥐어박으며 말한다. 주먹으로 그냥 치는 게 아니라 회전과 스핀이 동시에 가해지며 짖누르고 튕겨낸다. 꽤나 아프다 이거. 어, 어째 이 판국에도 나는 이게 내 엉덩이를 치던 그, 거시깽이와 같다는 느낌이… 화악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 역시. 난 변태… 왕 변태…왕 파리…대왕 파리…… 파리 대왕… 아무래도 좀처럼 현실 도피가 힘들다. 옛날같지가 않다. 휴우~~~~…동현, 이대로 죽어야 하는가? 안돼에에에―――!!! “그만 해라 좀.” “화장실로 끌고 가.” “헥!” “맨 위층?” “직원 화장실이 좀 한가하겠지?” “안돼에에에에에――” “돼.” 딱 잘라 끊고 둘은 계단을 올랐다. 버팅기는 내 발등만 계단에 연타로 텅텅텅텅텅텅 부딪쳐 무지 아프다… 아프다…아프다구―! 산으로 돌아가는 이 길은 왜 이리도 화려한가. 미치겠다. 거리의 모든 것들이 다 멋지다. 별 하찮은 것들까지 근사해 보인다. “나 저거 갖구 싶어.” “뭐?” 쳐다보지도 않고 상권이 붇는다. “핸드폰 지갑 달려있는 가방…” 처량하게 올려다 봤다. “…닥쳐.” 한참 뒤에 고개를 돌린다. “왜? 니 그 잘난 메이커 가방들은 다 어쩌고?” “돈 없어서 다 팔았잖아.” “그래서?” “사실은 일본에 유행하는 샌드백처럼 생긴 가방 갖고 싶은데…” “니가 여자냐? 갖고 싶은 건 정말… 저게 외제 병이라니까. 저것은 병이야, 병.” “눈탱이 허연거 바르고 다니는 그 고삐리 대가리 년들보다는 아직 낫지.” “카페라떼두 먹고 싶어…” “골고루 하네.” “원두향에 생우유맛…” “아라비아 원두지 그거?” “…아마도.” “야, 얘기하니까 먹고 싶다.” “…사러 가자.”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셋에게 둘러싸여 감시아래 구경을 했다. “나, 나. 무크 샌달. 저거 갖고 싶어.” “지랄하네.” “우리가 니 부모냐?” “사 줘―!” “야, 한 대 갈겨.” “아―! 저 카키색 쫄티 괜찮다! 대광이 입으며 뽐 나겠다!” “……” “……” “……” 대광이만 우물쭈물 웃고 나머진 살벌하다. 하지만… 배나온 상권이는 안 어울리고 대원이는 옷 많잖아… 어… 잰 누구냐… 세상에 구본승? 그 칠뜨기 같이 웃던 그 구본승?! 솔트진이라. 쿨독? 청바지만 입은 섹쉬한 저 총각. 내 넋을 빼놓네 그려. 동현은 셋이 뒤에서 불길을 휘날리는 것도 모르고 계속 쿨독의 포스터만 멍하니 보고 있다. “아―― 구본승 보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졌어. 이쁜 새끼를 보는 건 역시 짱이야.” “……” “패션리더――김.현.우! 우! 와! 아아―!” “……” “우우―! 슈퍼 울트라 캡숑 나이스 짱!” “……” “와―! 저 네이비 후드 감색이란 블루V네크티랑 니트 조끼랑 래글런 티 어때.“ “……” 무섭다. 그만 해야겠다. “나, 나이트장 가고 싶어…” 손가락을 빨며 올려다 봤다. 되도록 불쌍하게 보이게 노력하며. “가고 싶어…” “골고루 해라.” 둘이 한숨을 쉰다. 꺄호! 나이트다! 나이트. 쭉쭉빵빵한 여자 애들이랑 엉켜서 뒤흔들면 둘이 부러워 미치려고 하겠지… 고소하고 즐겁다. 히히히… 그런데 현실은 냉정했다. “어머, 쟤는 왜 왔데?” “집안이 푹삭 망하더니 뵈는게 없나보지.” 키득키득, 쿡쿡, 소근소근. 앉아 있는 자리가 거북하다. 내가 뭘 어쨌다고 저러는 거지. “병―신.” “기껏 빼내주니까 여긴 왜 오자고.” 상권이랑 대원이다. “일어나, 가자.” 또 양팔을 들려 끌려 나왔다. “병신아, 기집년들이 너 돌아오면 반겨줄 줄 알았냐?” “여기선 돈 없으면 병신이야.” “벗겨 먹을게 없는데 이제 왜 너한테 실실대냐?” “그 꼴 당할려고 오냐?” “병신.” 자꾸 병신 병신 하니까 눈물이 난다. “저 년들은 남 잘되는거 못 봐주는 년들이야.” “신경 꺼.” 울먹이는 날 끌어다 코란도에 처박았다.. “돌아가자” “가자” 대원이의 후렴구가 뒤따른다. 왠지 기쁘다. 눈물 난다. 대원이가 고개를 숙이고 귓가에 “괜찮아… 내가 있잖아.” 하고 속삭여줬다. 좋아서 눈물이 더 났다. 난 돼게 단순한 놈인가 보다. 좋아서 눈물이 계속 났다. 결국, 차를 멈추고 둘이서 날 양팔로 꽈악 안아줬다. 그래서 겨우 눈물이 그쳤다. 난 행복한 놈이다. 그래서 당분간 더 있어 보기로 했다. 딱 3달만 더. 아니, 2000년 시작할 때까지만. 여기 있으면 내가 왕…은 아니고 대접이 좋은데 (좋은 대접일까 과연?) 나가면 그지다. 당분간 여기 있을 때까지. 아빠――! 엄마――! 돈 많이 벌어서 돌아와야 해――!!! 늑대 한 마리, 추가! - VIOLENCE 외전 - 아아~ 정말 지겨운 새새끼들. 창 밖의 새소리에 다리를 아무렇게나 쭉 뻗은 채 멍하니 있다가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죽어도 울리지 않는 내 군밤타령. 엄마… 아빠…. 이제 기다리기도 지겨워. 안 올꺼야? 슬프다. 저절로 눈물이 고인다. 감상에 빠져 훌쩍대고 있자 대원이가 옆에 와서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 간다. 곧이어 대광이도 옆에 와서 쪼그리고 앉더니 한숨을 쉬며 들여다본다. “또 지랄이냐.” “어…엄마….” “대충 해 둬라.” 눈가를 주먹으로 쓱쓱 문대고 있자 더 서러워졌다. “다…다른 애들은 취직…나……여기서 맨날…흐으~” “알았어. 알았어. 그만 좀 울어.” “흐어엉~ 맨날 나…흐으…나만 가지고…흑, 윽, 으…!” 서러워하는 내게 대광이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나도…흐으…윽, 으…” “그만 울어!” 딸꾹! “으아아앙~!” 맨날 나만 괴롭혀――!” “저걸 어쩌냐?” “냅 둬. 놀고 먹게 해주니까 배부른 소리 하는 거야.” “봄 타나?” “먹을 걸 더 줄까? 아니면 뭔가 일꺼리라도 줄까.” 수군수군 쑥덕쑥덕. 나만 빼고 얘기다. 또 왕따야…. 부운 눈을 가라앉히려고 화장실에서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오자 방문 틈새로 새어나온 두런두런한 말소리가 또 소외된 자의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가출할 테다! 하두 울어서 목이 아프다. 목도 마르고. 물이나 잔득 마시고 나올 걸. 터덜터덜 길을 걸어서 어둑어둑해지는 도로를 끝도 없는 하염없는 방랑의 길이 접어든지 얼마인지. 지치고 배고프고 머리 아프다. 손에 들린 핸드폰의 액정을 멀건히 바라보다 꾹꾹 눌러 저장한 번호들을 넘겼다. 아, 선일이 번호도 있구나. 이 놈은 뭐할까. 삐리리리― 『여보세요?』 “선일이? 나.” 『…나? 나가 누구야?』 “에…. 동현이…” 『동현이?! 야! 너 지금 어디야? 아니, 형! 그 동안 어디 있었어?! 어디야 지금!』 “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길을 잃었나 봐…” 신속한 기동력으로 선일이가 나타난 건 40분 뒤였다. 내 엉터리 설명에도 잘도 찾아온 게 신기하다. “빨리 타!” 타자마자 급 발진하더니 죽어라 달린다. 뭐, 사채업자들한테 갇혀 있다가 탈출했다는 과장이 아주 쪼금 섞인 친절한 설명 덕이지만. “형… 고생이 심했구나…” 한참을 달려서 시내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좀 안심이 되는지 선일이가 나를 보고 안쓰럽다는 듯 굉장히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머리 탓일 거라고 생각돼 머리를 감추려고 머쓱하니 벅벅 긁자 기가 막히다는 어투로 말했다. “평소에 그렇게 부티나게 하고 다니더니 그 머리도 머리지만 옷차림이며…. 부랑자인 줄 알았다. 너 서 있는 포즈도 평소 니 모습이랑 너무 달라서 못 알아볼 뻔했어. 세상에… 새카맣게 탔구나. 그렇게 마를 줄 몰랐다. 깡패들이 나무 토벌이라도 시켰어? 어떻게 그렇게….” 말이 막히는지 입만 벌리고 있다. “많이 웃겨?” “……응.” 저래뵈도 선일이는 의리 하나만은 끝내 줬다. 그게 더 부담스러워서 집이 그 모양이 된 뒤로 연락할 엄두도 못 냈는데…. “나 되게 뻔뻔스러워졌나 보다.” “뭐가?” “아, 아니야.” 밤에 그놈들이 찾아와 날 도로 끌고 갈 때까지 좀 돌아다니면서 놀아야 할 텐데. 우선 선일이가 안되겠다고 헬스 타운으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싹하고 나오자 선일이가 감회가 새로운 지 물기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안해지게 시리. “우선 그걸로 참아, 날이 밝는 대로 새 정장 맞출 테니까.” “나는 이대로도 좋은데.” 선일이 양복바지랑 셔츠는 나랑 체구가 비슷해서인지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허리며 단 길이가 좀 크지만 인간다운 모습을 하게 된 게 어디냐. “옷도 준비해 다니냐?” “야근이 잦아서 두어 벌 정도는… 자, 이제 말해 봐. 어디서 뭘 한 거야?” “음….” 머뭇머뭇거리다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 “응, 그래. 다 말해 봐.” “술 마셔도 돼?” “와―! 디게 맛있다.” 맥주 마신 거 정말 오랜만이다. 싸한 이 맛. 시원하게 목 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끝맛. “목에… 상처 있다?” “푸웃――――!” 벌컥벌컥 들이키는 도중에 멋들어지게 뿜어내 버려서 저도 모르게 뒤로 피하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미, 미안! 잘못했어!” 그런데 선일이는 화도 내지 않고 멍하니 날 보고 있기만 했다. 어? 안 때리는 건가. 웨이터가 가져다 준 행주로 머리랑 얼굴을 닦으며 심각한 얼굴을 짓는다. “동현이 형… 진짜 고생이 심했구나.” 맞다. 선일이는 그 세 놈이 아니다. 날 때리지도 않을 거였다. 슬그머니 머리를 가린 두 손을 내리고 멀뚱멀뚱 잔을 내려다 봤다. 선일이가 안주를 추가 시켜 준다. …나보고 설마 내라고 하진 않겠지? 먹어도 될…까…? 머뭇거리며 쳐다보자 말한다. “내가 내는 거야.” “고마워!” 선일이가 점점 더 불쌍하다는 얼굴로 본다. …티 났나? “야… 아니, 형. 진짜 그렇게 마셔도 돼?” “응.” 거기선 맨날 깡소주였는데 맥주 쯤이야. 히죽히죽 웃으며 피쳐를 통채로 비우자 선일이가 불안한 듯 바라보았지만 거뜬하다. 난 예전의 동현이가 아니라니깐? 화장실 갔다 와서 선일이랑 얘기하는데 잘 시간이 되었는지 졸려왔다. 그런데 난 잊고 있었다. 난 술이 무지 약하다. 엄마 아빠 두 분다 소주 반잔이면 쓰러져 자는 체질이니까 나도 그랬다는 걸. 흔들림에 눈을 뜨자 선일이 차의 뒷좌석이었고 잠은 계속 쏟아져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인사는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일아…. 안녕…” “…응?” “다음에 또 봐….” “어딜 간다는 거야?” “데리러… 올…꺼야…” 그것만 겨우 말하고 들고 있던 머리를 떨군 게 마지막 기억이다. 짹짹짹… “저 놈의 새새끼…. 언젠가 내가 반드시 참새구이를 해서…” “아, 시끄러웠어?” “……!!!” 벌떡 일어나 앉았다. “크윽――!” 머리가 부서질 것 같다. “누워 있어. 그러게 웬 술을 그렇게 마시냐? 지 주량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어, 어디…” “어디긴? 내 오피스텔이지.” 환한 햇살이 침대 위에 가득 쏟아진다. 하얀 시트가 눈부시다. 창 밖으로 창살에 참새가 나란히 두 마리 앉아 겁도 없이 창턱에 놓인 하얀 쌀을 쪼아먹 고 있다. 침대 왼 옆은 주방인지 길게 싱크대가 있고 맞은 편엔 긴 책상. 그 위는 빽빽하게 놓인 모니터며 본체, 프린터, 팩스, 전화기, 맥 외장하드, 키 보드 등으로 어지럽다. 푸슛― 맥주캔을 따더니 유리컵에 토마토 쥬스와 반씩 섞어 잔을 내민다. “자, 해장술.” 한 입 겨우 마시고 겨우 겨우 목만 축인 뒤 돌려주자 선일은 나머지를 들이키고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샤워하고 와.” “응….” 터덜터덜 시트를 몸에 감은 채 기어가듯 걸어갔다. “아이구 머리야….” 거울을 보니 가관이다. 샤워기를 틀고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양껏 몸을 적시자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뽀드득 뽀드득 내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가는~♪” 흥얼거리며 몸 구석구석을 잘 씻고 나오자 새 옷이 문 앞에 있었다. 뽀송뽀송 하얗고 기분 좋은 면의 질감. “꼬까옷 입으니까 좋아?” “응!” “어젠… 가관이었지. 내 평생에 그런 형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 모습이 어땠는데?” “…맨발에다. 원래 색이 어땠을지 모를 청 반바지 하나 엉덩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머리는 쥐가 파먹은 것처럼 해 가지고는… 압권은 땟국물이 줄 줄 흐르는 얼굴이었는데, 거기에 눈물자국이 나서 말라 있었다.” 듣고 보니 창피한 꼴이다. 남의 얘기가 아닌데. 고개를 숙이고 있자 뺨을 손으로 감싸 들게 한다. “얼굴… 많이 상했다.” “……” “고생이 심했구나…” “……”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사실 밤에 그 세 놈이 와서 날 데려갈 줄 알았기에 아침에 눈뜨면 산일 줄만 알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생각을 미쳐 못했다. 멍하니 서있자 침대 머리맡에서 향수병을 들어 손목을 잡고 뿌려준다. “아… Tommy다…" “형 이 계열 좋아하지?” “응. 타미 로션도 있어?” “있어.” 신난다. 로션을 듬뿍 덜어 얼굴이랑 손이랑 몸 전체에 발랐다. 선일이가 등도 발라줬다. 그 동안 상했던 얼굴이며 피부들이 기분 좋게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으응~ 냄새 너무 좋아.” 벗은 채로 침대 위를 뒹굴자 선일이가 웃는다. “진짜 그 동안 뭘 한 거야?” “…잡혀가서 일했어. 1년만 있기로 했는데 2년이 되도 안 풀어주잖아. 그래서 도망쳤어. 근데 걔네들 귀신같이 알고 밖에 도망치면 아침에 돌아와 있더 라구.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가 했지.” “어떻게 알아? 아니, 형을 어떻게 찾아?” “응…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놈들이야. 내 냄새를 아나 봐.” 진담인데 농으로 듣는지 웃는다. 진짠데… “그럼 그 동안 계속?” “응.” “2년 동안?” “응.” “형… 진짜 고생 많았구나…” 선일이가 비장한 얼굴로 양어깨를 잡고 얼굴을 들여다본다. 선일이가 그 머리 좀 어떻게 하러 가자고 해서 대찬성을 하고 밥도 먹을 겸 이대 앞 주노로 갔다. 도화라는 이름의 이쁜 아가씨가 날 보고 ‘기가 막혀’ 라는 얼굴을 하더니 한참을 바라보다 선일이랑 마주보고 또 날 돌아보고 하더니 머리카락을 한참을 만지고 주물럭거리다가 더 짧아질 거라고 했다. …그럼 여기서 더 길어지게 해 달라고 내가 그럴 것 같았나? …이렇게 짧은 건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다. “날나리 군바리 같애.” 선일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군바리보다는 낫지. 색깔이 튀잖냐.” “하긴…” 도화 아가씨의 권유로 머리를 거의 하얀 색에 가깝게 탈색했다. 머리도 목덜미를 치는 건 내가 싫어해서 목덜미를 남기고 요즘 유행한다는 더벅머리로 대충 쳤다. 유지태 머리란다. 드라마 허준 스승 이름 같은데, …이런 게 유행이라니, 말세다. 하지만 기쁘다. 난 좀 튀게 하고 싶었으니까. 히죽히죽 웃는 날 두고 선일이는 돈을 내고 지하로 내려가 스파게티를 사줬다. 메뉴의 요리마다 칼로리가 써있는 살벌한 가게였는데 비싸서인지 여자 애들은 2개 시켜 5명이 같이 먹는 엽기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홍합이 가득 들은 Cozz랑 모시조개랑 새우 중에 경합을 벌이다 올리브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낙찰된 Shrimp Broccoll. 그리고 다 못 먹는다고 만류하 는 여직원를 노려보며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베이컨이 들어간 Carbonara 까지 시켰다. …결론은? 무지 맛있었다. 해물 스파게티는 시원했고 새우는 매콤한 게 감칠 맛 났고 특히 까보나라는 끝내줬다! 그 정통 파마산 치즈의 크림 소스가 죽였다. 독인산 화이트 와인도 좀 가볍긴 해도 별로 안 셔서 맛있었고 마늘 빵이랑 같이 나온 바실리코 소스는 토마토랑 키위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서 발라먹으니 행복, 그 자체였다. 눈물나게 맛있었고 선일이도 좋아했다. 싹싹 다 긁어먹고 포만감에 먼 곳을 바라보며 건네준 담배 한 대 태운 뒤 선일이 손에 이끌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와 재즈 바 Nomal에서 커피 한 잔. …역시 다방 커피가 최곤데. 에스프레소는 내 입맛에는 너무 탄내가 나고 쓰다. 위에서 내려다 본 신촌의 야경은 화려한 거리 외에도 공사판을 연상시키는 뒷면과 앙상한 철길까지 보여 왠지 인생무상을 연상케 했다. 주조로 빚은 재떨이를 보며 침을 질질 흘렸더니 선일이가 사준다고 해서 말렸다. 왠지 살인 무기가 될 듯해서 무서웠으니까. 무게도 묵직하고 손에 잡 히는 그 촉감이 딱이었다. 갈구기 맨 머리 내리치기엔. “형… 정말 많이 망가졌구나… 옛날엔 그렇지 않았는데…” “내가? 옛날엔 어땠는데?” “……” “어땠는데에――?” “얼굴은….” 고개를 들더니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외면한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하얀 얼굴로, 그 까만 맑은 눈으로, 모든 사람을 무시한다는 듯한 그 무감각한 표정으로 바라봤지.” …그런 적 없는데… “그래서 여자들이 난리였지만 정작 형은 관심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 난리였다. 뭐, 둔한 형은 몰랐겠지만. …형, 여자 관계가 깨끗했잖아 워낙 에. 집에 여자들이 수없이 드나들어도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고.” “그거야 내가 게…” 핫! 이건 극비인데, 요놈의 입! “게?” “게…게임을 좋아하니까.” “게임이랑 그게 무슨 상관이지?” 마치 심문하는 형사의 눈빛으로 선일이가 추궁해 온다. 아앙~ 어떻게 해~. “하긴,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생각날 때만 한두 대 피는 형이 그럴 리가…” “그, 그러냐?” “난 형의 그 윤기가 흐르는 갈색머리가 좋았어. 언제나 막 감은 듯이 청량감이 들어서. 다를 놈들이랑 달리 워낙 말쑥하게 하고 다녔잖아.” “그거야… 내가 엄마랑 워낙 쇼핑 다니는 걸 좋아 하니…” “엄마?!” “왜…” 괜히 주눅이 든다. 말도 막 자기 내키는 대로 너랑 형이랑 섞어 쓰고. “내 앞에서 그렇게 튕기더니… 기억해? 너 내가 따라 준 잔에 손도 안대고 거절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때 뭐라고 그랬는지 기억해?” “…아니.” “너랑 잔 돌리고 싶지 않다. …내가 얼마나 충격 받았는데 엄마? 그게 형 입에서 나올 소리냐?” 아, 기억난다. 난 소주 안 마시는데 잔이 왔다. 그래서… 뭐, 못 마신다는 소리는 자존심 상 못 말하고 너 잔 안 마신다고 했지. 그게 더 낫잖아. “그것뿐만이 아냐. 형 톱으로 성적 나왔을 때도 내가 축하한다고 하니까 뭐라고 했는데? 뭐? 2등 축하는 필요 없다고? 하! 내가 정말 그 때….”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울그락붉으락하다. “죽어라고 공부했는데 형은 학교에는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 자리 차지하고 날 밟았어!” “어… 미안.” “그것뿐이냐?” “에… 미안, 실은 잘 기억이 안 나. 하지만 별 생각 없이 한 얘길 꺼야.” “형… 정말… 적을 만드는 타입이야. 그러니까 형 상황이 나빠지니까 다들 보란 듯이 등을 돌린 거라구!” “천성인가 봐…” 하지만 친해지면 할 얘기 못할 얘기까지 하게 되는데 나는 내 입을 잘 간수할 자신이 없는 걸…. 게다가 술도 더럽게 약한데 취해서 무슨 얘기할 지 무 서워서 같이 술을 마실 수가 없어… 지금은 다르지만. ……말할까? “지금이니까 얘기하지만 그런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간도 쓸개도 다 내놓고 다닌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데.” “응…” “그런데 왠일로 내게 연락한 거야? 어떻게 내가 생각났어?” “응… 핸드폰에 번호가 있었어.” “……그것뿐?” 이를 간다. 화난 것 같다. 시무룩해져서 작게 입안에서 중얼댔다. “딴 사람 번호는 없었어… 너 밖에…” 화났어? 슬며시 올려다보자 웬일로 웃고 있다. 의아해하며 보고 있자 손짓으로 점원을 부른다. “여기 안주 제일 비싼 걸로 갖다 줘요.” 기분이 많이 좋아있는 것 같아서 기회다 싶어 말을 꺼낼 눈치를 봤다. “나, 잘난 척 한 거 아냐. 나 비밀이 있는데 들키고 싶지 않아서 조심한 거야.” “그래. 그래. 많이 먹어.” 우선 먹고 음… 이 튀김 굉장히 맛있다. 선일이도 한 입? 포크로 찍어 내밀자 받아먹는다. “맛있지?” “응. 그래 맛있다.” “이것도 맛있어.” 커다란 왕새우를 찍어 꼬리를 따내고 몸통만 선일이 입에 넣어 주고 나는 머리를 뜯어먹었다. 나는 머리가 좋더라. 분해가 좀 힘들지만 특히 뇌는 더 맛있다. 씹으면 다리 위에 촘촘히 붙은 살도 감칠 맛 난다.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자 선일이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형은… 정말 귀엽구나… 생긴 건 귀족적으로 생겨 가지고 그렇게 어렵게 굴더니…. 이렇게 형이랑 마주 앉아서 술을 같이 하는 게 꿈만 같다.” 대답보다는 머리를 빈틈없이 갉아먹느라 정신이 팔려 끄덕이며 눈만 깜빡였다. “누가 그러더라고. 너 기분 좋을 때 정말 귀엽게 웃는다고. 나는 한 번도 못 봐서 긴가민가 했는데… 정말…” 그러면서 눈꼬리를 접고 자상한 아버지처럼 미소짓는다. 선일이…… 의리맨이라고 학교에 소문난 건 나까지 아는 사실이니 착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밥도 사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새 옷도 주고 정말 좋은 놈이 다. 나중에 엄마 아빠오면 꼭! 같이 해외 일주하자. 요트로 한다고 하면 아빠가 날 죽일라고 할 테니 유레일 패스… 아, 나 졸업했지? “선일이, 저번에 학교에 있던데 아직 졸업 안 했나?” “군대 다녀왔으니… 맞다! 형 저번에 학교에 나타났었지? 시험볼 때. 그 때 왜 왔었어? 졸업했다고 하더라고 애들이. 나는 그 때 막 제대해서 몰랐었는 데. 시험 도중에 형을 끌고 간 그 사람들…그 사람들이야?!” “응.” 단순명료한 대꾸에 할 말을 잃었는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다행이다. 졸업한 거 깜박하고 학교 와서 정신없이 도망친 뒤 창피해 죽을라 그랬는데. “그 형들. 졸업반 선배들이잖아. 우리 학교.” 헉――! 그랬다! 시상에, 시상에! 잊고 있었다! 같은 학교다――! “그 형들이었어?!” “어……. 응.” 포기했다. 술도 마시고 잠도 오고 잠이나 자자. “이러지들 마요. 형이 산 속에 갇혀 있었다는 거 들었어.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동현이 형한테 그러는 겁니까?” 으아, 왔구나~ 왔어~ 배뱅이가 왔구나~ 왔어~. 부시시 침대 속에서 몸을 일으켜 옥신각신하는 현관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왔어?” 우와, 눈에서 레이져 나온다. 갈구기맨. “왔어어~?” 말꼬리를 길게 늘려 올리며 눈을 히번뜩 올려 뜬다. 우와, 오늘 잠은 다 잤다. “아잉~! 삐지긴.” 주먹을 휘두르듯이 크게 모션을 취해서 손끝으로 뺨을 콱 찔렀다. 죽어라 새꺄. 뽈따구니에 박힌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다. 갈구기맨이 이를 악물고 있었으니까. 이래서 난 니가 싫어. 눈이 연두색이 안된 갈구기맨은 왠지 만만해 보인다. 절대루 아닌데… “죽고싶냐?” “아, 요즘 유행어는 죽고잡냐야. 웃기지? 웃기지?” …진짜 쎄게 때리다니, 치사한 새끼. 맞은 뺨이 퉁퉁 부어서 아프다. 입안도 찢어져서 당분간 밥 먹기는 글렀다. 치사한 새끼 같으니라고. 내가 밥 못 먹으면 ×을 안 싸니까 하기 편해서 일 부러 한 짓일 꺼다. 더런 놈. 코란도에 끌려오는 내내 입을 댓발로 내밀고 무언(無言)의 반항을 초지일관 내보였다. …더 아프게 돼 버렸다. 선일이가 한 방에 뻗어서 다행이다. “타, 안 타?!” 눈동자가 안보일 정도로 눈을 부라리지만 버팅겼다. “씨발… 맞고 탈래?” “어따 대고 씨발이야?! 내가 썅소리나 들으면서 타야 되?! 내가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냐? 왜 자꾸 때려?” 간만에 반항다운 반항을 했다. 식식대며 노려보자 주먹을 치켜든다. 씨발… 진짜 씨발이다. 죽여라 죽여. “…뭐가 불만이야?” 쥐어진 주먹이 새하얗게 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저 주먹에 맞으면… “다, 답…답하단 말야…” “그게 다야?” “…다야? 지금, 다라고 했어? 그게 다냐고!?” 눈물이 치솟는다. 바보처럼. “내가 개냐? 가둬놓고 굴리게! 맨날 때리고! 맨날 맨날!” “그래서 너도 해 줬잖아.” “……” 기가 막혀 더 이상 말이 안 나온다. “끄으…. 개자식! 개자식! 넌 정말 개자식이야! 셋 중에 니가 제일 싫어! 말만이라도 좋게 못 해?! 왜 맨날 날 괴롭히는 거야! 왜 맨날――!” 추하게 눈물이 떨어지고야 만다. “흐으으……” 주저앉아 얼굴을 팔로 가렸다. “이젠 정말 싫어! 싫다구! 너 따위, 죽어버려――!” “…알았어. 그만 울어.” “싫어!” “맞을래?!” “또 내 몸에 손대 봐. 나도 그냥 안 있을 거야.” 얼굴을 들었다. “너 따위한테 맞고 살 거면 차라리 죽어 버릴 테다.” 이를 갈며 노려보자 한쪽 얼굴이 실룩, 경련을 일으킨다. ――――퍽! 눈앞에 스파크가 튀는 강한 펀치를 먹고 곧이어 연속으로 두들긴다. 정신없이 맞다가 모질게 각오를 했다. 씨발… 죽어 버릴 테다. 입을 열고 혀를 씹었다. 눈물이 치솟는 끔찍한 통증. 가슴이 메이는 고통 속에 단단히 물린 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죽는 건 내 맘대로다. 니네 맘대로 안 해. “뭔 짓이냐!” 뺨을 맞았다고 느낀 건 한참 뒤였다. 충격으로 바닥에 나뒹군 뒤에야 멍한 머리를 흔들어 멍하니 앉아있자 멱살을 잡아 쥐더니 들어올린다. “입 벌려!” 억지로 입안으로 손가락을 넣으려고 하기에 다시 혀를 물려고 했지만 들어온 손가락만 물었다. “아악――!” 대신 손가락을 힘껏 물었다. 알고도 힘을 빼지는 않았다. 퍽! “안 잘라진 게 용하다.” 대광이가 치료해 준다고 집에 들어오자 호들갑을 떨었지만 훽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이이 아!(만지지 마)!” 외치는 겨를에 입 밖으로 피가 튄다. 줄줄 턱을 타고 흐르는 피로 옷이며 몸이 엉망이지만 아릿한 입안의 통증보다도 분노가 먼저였다. 만지려고 내밀어지는 손들을 뿌리치며 발버둥쳤다. “아! 우아!(놔! 놔!)” 쏟아지는 피로 켁켁대며 소리를 지르자 질린 듯이 뒤로 물러나는 대광이의 뒤로 상권이가 나타났다. 노려보며 입안의 피를 여전히 줄줄 밖으로 쏟아내고 있자 대광이의 시선이 대원에게 향한다. 이를 갈며 대원이 입가를 실룩였다. “지가 물었어,” 다시 날 보더니 다가온다. “아!(가!)” 소스라치며 움츠리는 날 와락 안더니 입맞춤한다. “―――!” 발버둥치며 등을 내리치고 쥐어뜯어도 혀를 넣어온다. 그 혀를 온 힘을 다해 씹었다. 잠시 움찔 하더니 뒷덜미를 감싸며 더 깊이 입을 맞춘다. 양 혀에서 쏟아져 내리는 피로 입안이 메운다. 식식대다 고개를 들자 입가에 피범벅이 된 상권이가 내 입가를 새빨간 혀로 핥아 준다. “기분이 풀렸니?” 그 혀가 찢어져 속살이 드러나 상당히 깊게 잘린 게 보인다. 여전히 피는 줄줄. 그래서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식혀졌다. 입가며 코, 눈까지 입술로 쓸며 낮게 속삭인다. “그렇게 화가 났어? 동현이… 화가 많이 났구나. 화내지 마라… 내가 잘못했으니까. 미안하다. 미안해…” 노기로 들썩이던 어깨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아래 입술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쓸며 계속계속 등을 어루만진다. “미안하다… 화 풀어라. 응? 미안해…” …그래서 화가 풀렸다. 그렇게 식을 줄 모르고 불타오르던 격한 분노가 서서히 그 손길에 쓸려 파도가 가라앉듯이 점차 고요히. 불곰 같은 덩치의 상권이의 무릎에 앉아 젖은 수건으로 입가를 닦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혀에 입안을 맡긴 채 피곤한 몸을 맡기고 잠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깨어났을 때 아찔한 혀의 통증이 있었지만 상권이가 다시 계속 핥아 주고 빨아 준 덕에 출혈은 멈춰 있었다. “아직 아파?” 잠자코 끄덕이자 다시 몇 번이고 핥아 올린다. 맞은 뒤통수가 아직도 지끈거렸다. 그것을 아는지 상권이는 계속 뒷목을 쓰다듬길 멈추지 않는다. “…아…파…” 투정부리듯 중얼댔다. “이제 화 풀렸어?” “……응.” “앞으로 나가 놀고 싶으면 얘기해 데려다 줄게.” “…정…말?” “그럼.” “선일이랑 또 놀아도 돼?” “……” “선일이가 까보나라랑 코시스파게티랑 쇠고기 튀김이랑 맥주 사줬어. 이 머리도 염색해 줬다? 허준 스승 머리래.” “…먹을 거 사준다고 아무나 따라가지 마.” “아무나 아냐! 선일이 같은 학교 다녔어.” “길가에서 누가 회 사준다 그러면 따라갈 꺼지?” “……전복이나 오도리면.” “그거 봐.” “내가 애야? 어때.” “한가지만 묻자.” “뭐.” “선일이라는 놈이랑 잤어?” “응.” “……잠만?” “응.” “…다른 건?” “뭐? 옷 빌려 입은 거? 아니면 로션 빌린 거? 아니면 향수 빌린 거? 아니면 뭐?” “…혹시 그 놈이 너한테 이상한 수작 부리지는 않았나 해서.” “에이~ 걔는 남자랑 안 자.” “어떻게 알아?” “……나랑 같이 자도 안 건드렸잖아?” “그만 두자. 내 머리만 아프다. 아무튼 앞으로는 외박하지 마.” “잠만 안 자면 다음 날 돌아와도 돼?” “전화하면 데리러 갈게.” “내 핸드폰 번호 알아? 011―998…” “알아.” “응, 그럼 나 오늘 또 나가논다.” 기분이 나아져서 콧노래를 부르며 핸드폰을 들고 선일이 번호를 눌렀다. “이리로 와서 놀자고 해.” “여기? 여기선 재미없는데…” “자꾸 얻어먹으면 미안하잖아. 우리도 대접해야지.” “…그럴까?” 고개를 갸웃하는데 전화 받는 소리가 난다. “아! 선일아. 나야 동현이. 오늘 시간 돼? 되면 놀자.” 길가에 서 있다 선일이 차가 멀리 나타나기에 길 가운데 나가서 양손을 들고 뛰며 퍼덕였다. 과일 바구니를 들고 내린 선일이에게 달려가 외쳤다. “있잖아, 상권이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준데!” “응? 누군데? 이거…” 과일 바구니를 받아 맨 위의 바나나를 찜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들여다봤다. “여기 서열 넘버1이야 걔가. 그리고 넘버2가 갈구기 맨이고 넘버3는 대광인데 좀 음침해. 순서가 맞나? 맞을 거야 아마. 셋이랑 여기 살아. 엄마 아빠가 여기 맡겼어. 아, 나 말이야. 나. 벌써 2년이 다…” “들어오라고 해라, 거기 서 있지 말고.” “아, 응.” 별장으로 오르는 계단을 먼저 올라가 상권이에게 자랑하자 좋겠다. 하곤 끝이다. 상권이가 왠일로 일어나 내려오더니 고개를 숙인다. “우리 동현이가 폐가 많습니다.” “아니요. 제가 오히려…” 계단 중간에 서서 서로 머리를 꾸벅꾸벅하는 게 웃기다. “뭐야, 니네 선 봐? 왜 그래?” “갈구기맨은 나가서 저녁에 오니까 맘 놓고 놀자. 대광이는 가출 중이고 지금은 상권이랑 둘뿐이야.” “가출?” “어, 삐졌나 봐. 어제 꼴보기 싫다고 이제 같이 안 자겠…아, 아…” “잠자리를 마루에 내준다고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동현이가 좀 단순하지. 실은 집에 볼 일이 있어 간거야.” 어느새 서로 말을 튼 둘이 사이좋게 부르스터를 꺼내 냉장고의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한다. “그 상추, 내가 다 씻었어. 잘했지?” 선일이가 잠시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한숨을 쉰다. “원래…저런 성격이었나요?” “응? 올 때부터 저러던데?”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하다. “있잖아, 선일이 집 디게 멋지다? 컴도 있고 팩스도 있고 출력기도 칼라잉크젯이랑 레이져랑 2대나 있어. 그리고 침대랑 부엌이랑 붙어 있어서 디게 편 해.” “좋겠다.” 드디어 갈구기맨이 한마디한다. 잠깐, 갈구기맨? “너?” “왜, 일찍 돌아와 불만이냐?” 어느새 돌아왔는지 소리도 없이 들어온 대원이가 팔짱을 끼고 등뒤에 서 있다. 현관을 등지고 앉아 있다 갑자기 당하자 그냥 이유도 없이 떨렸다. “저건 뭐냐?” 날이 갈수록 짜증나게 구는 인간. “내 친구야.” 그 말에 오만상을 팍 구긴다. “니 머리 그렇게 만든?” 말하며 발을 들어 머리를 밟아 누른다. “더럽게!” 저건 생긴 거 반의 반이라도 따라가면 정말 좋을 텐데. 정떨어지게만 구니. 정말. 사내의 발에 밟혀 바르작대는 동현을 보고 있자 부아가 치밀었다. 그는 저런 대접을 받을 인물이 아니다. 내 기억 속의 그는. 내가 좋아하던 콧등에서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리는 앞머리.머리카락의 아랫부분만 염색을 해서 자연스럽던. 왜 저렇게 변했을까? 그 자신만만하던 모습이. 그 미소가, 어째서 저런 가벼운 것으로 바뀐 것이지? 온 몸에서 풍겨 나던 오만함은? 그 눈이 시리던 투 명한 미소는?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많이 변했네요.” “변하긴 뭐가! 갈구기맨! 발 치워!” 잊을 수가 없다. 동현은 고교시절부터 나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하얀 이를 보이며 활짝 웃어 보이는 얼굴, 그 즐거운 듯한 유쾌한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까지 기분이 맑아질 정도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양팔에는 한손에 잡힐 듯한 가는 허리를 한 여자들이 안겨 있었다. 그 여자들에게 당시에 얼마나 내가 질투를 느꼈는지! 그런데… 그런데…!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동현은, 나의 동현은! “춘향아, 한 잔 따라라.” “아잉~ 서방님. 저도 한 잔 주세야죠~.” 대뜸 덩치의 무릎에 앉아 잔 하나를 돌리며 킬킬대는 것은 완전히 동네 작부 수준이었다. 잊기 위해 마셨다. 뭔지 모르지만 이건 잊어야 했다. 이 감정들을 지우고, 그리고 과거의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지워 버려야 한다. 추억은 지나버린, 다시는 바꿀 수 없는 추억이기에 아름다운 법. 추억으로 남기자…. “괜찮아?” 눈을 뜨자 덮친 것은 징징 울리는 극심한 두통. 흔히 길거리에서 여중생들이 빨아먹는 긴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누구도 아닌 그 동현이 사탕을 빨며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고 있다. 어느새 갈아 입었는 지 너무나 짧은 반바지에 드러난 다리가 눈이 부시다. “요즘엔 종류가 너무 많이 나와서 매일 다른 거 먹어도 끝이 없다니까. 한입 줄까?” 빤히 보고 있자 시선을 느꼈는지 말하곤 입안에서 꺼내 앞에 내민다. 나는… 그 사탕의 향기에 달콤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단 것은 싫어하는, 오히려 질색을 하는 내게 이제는 사탕은 낯설은 음식이 아니다. 천천히 입에 물었다. 혀를 찌르며 흡수되는 단맛, 동시에 그레이프 향이 코를 찌른다. 황홀함과는 관계없이 뱃속의 저 아래부터 역류를 하기 시작한다. 빼서 다시 돌려주고 기억하는 화장실의 방향으로 눈앞이 샛노랗게 변하는 것을 보며 걸었다. 알아버렸다. 깨달아버렸다. 이것은…사랑이다. 변기에 대고 쓴 위액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렸다.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 그 웃음소리가 주위에 메아리치고 울려 퍼진다. 미친 자식… 오방중에 웬 지랄이야…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미친 짓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는다. “크흐흐…크흐흐흑…키히히히…” 숨이 막히고 호흡 곤란으로 눈물 콧물이 나도록 멈추지 않는 실없는 웃음. 실소. “축하한다…” 말이 새어나온다. “축하한다 이선일!” 실연이냐… 그까짓 실연 하나 때문에 망가지는구나 그 잘난 김동현이 사내자식 하나 때문에… “잘났다 이선일! 꼴 좋다 이선일!” 저 어둠에 대고 멋지게 소주병을 들어보이며 건배. 죽어도 개폼 잡는 것만은 잊지 않는 구나 이판국에… 잘났다. 잘났어…! “우웨엑――!” 땅 위에 오바이트를 하며 얼굴을 쳐박았다. 이마를 부비며 거칠게 힘겹게 쏱아내는 것은 구토물이냐 토사물이냐 아니면… 질긴 미련이냐… “킥킥…크흐흐흐…!” 망가지자. 오늘만은 망가지자. 그래… 오늘은 그럴 자격이 있어… “으흑! 살살! 아파―!” 몇 시간째인지 들려 오는 저 비명은 동현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종류의 신음이 섞여 안쪽 방에서 계속 새어나오고 있다. 입을 닦고 나오자 오른 쪽 의 열린 방문 사이로 보인 것은 뒤엉켜있는 세 사람이었다. 정확하게는 동현과 두 사내…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문을 등진 동현을 안은 채 이쪽을 보고 히죽, 웃음 지은 사내가 보란 듯이 허리 움직임을 요란하게 했다. 동현의 신음에 눈을 돌리고 나온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계속 그렇게 이어지는 광기에 찬 비명에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새소리에 눈을 떴지만 왠지 고요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방을 나오자 현관 밖 계단에 선일이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꽤 오랫동안 있던 눈치였다. 알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나쳐 나오자 선일이가 뒤따라 나오는 기색이 느껴진다. 시선을 내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 뒤따라오는 선일을 아프도록 느끼며 걸어가다 대원이가 멀지 않는 곳에 마주 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직 선일을 알아채지 못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내 발소리에 고개를 드는 동시에 멱살을 쥐고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입을 짖누른 건 거의 동시였다.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대원의 입에 깊게 입맞춤하며 도발했다. 놀라 커진 눈. 의아 하다는 눈빛. 그래, 이건 비정상이야. 그러니까 내게 신경을 집중해. 조바심이 나서 그의 다리 사이로 한쪽 무릎을 밀어붙이고 격하게 그 사이를 허벅지로 부비며 내 다리 사이도 그의 다리로 문질렀다. 지겹게도 흥분이 되지 않는 그 짓을 하며 어서 빨리 선일이 지나가기를 빌었다. 대원의 눈이 내 뒤를 응시한다. 멱살을 다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다리에 힘을 주어 밀며 버티었다. 대원도 그런데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고 몸의 긴장을 풀었다. 안도하는 듯한 얼굴. 의심의 빛이 사라지는 그 눈을 보며 기뻤다. 조금… 그의 안중에 선일은 없었다. 오직 ‘이 놈이 왜 이런가, 이런 노는 놈인가’ 에서 ‘그렇구나.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얼굴로 바뀌는 그 표정의 변화와 안도 감이 날 기쁘게 했다. 한참이 지난 뒤 떨어지고 얼얼한 입으로 돌아서는 내게 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권이는 선일이가 없어졌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갔어…라고만 했다. 미안했다. 선일이에게도 대원이에게도. 그리고 상권이랑 대광이에게도.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구질구질해서 참았다. 이제는 선일에게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그런 식으로 내 18번째 탈출은 어두운 분위기 아래 끝이 났다. “하아… 하아…”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걸어 몇 번이고 포기할까 하는 마음을 두들기며 겨우 별장이 보이자 가슴이 시원해졌다. 올라가는 박동수를 느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쿠당탕―― 쨍강―― “왜 때리고 지랄이야!” “너 일루 못 와? 당장 이리 와!” “싫어!” 콰당――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뛰쳐나오던 동현이 멈췄다. “선…일…?” “너 잡히면 오늘 죽을 줄 알아!” 뒤따라 나오던 대원이 동현이 멈춰서 있자 무슨 일인가 내다보곤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볼일?”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내뱉았다. “나, 동현이 좋아한다!” “거, 당돌한 놈이네….” 어쨋거나 마주앉게 된 자리에서 변함없이 상권은 술을 기울이고 있다. “맘에 든다.” 초조하게 발을 테이블에 앉아 발을 흔들던 동현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든다. “다 알고 온 거지?” “네.” “그럼 알겠지.” “…뭘 말씀이십니까?” “동현이 공동 소유인 거.” “…그거라도 제겐 좋습니다.” “반대! 반대! 이건 불공평해! 반대!” 동현이 오른 손을 치켜들고 외쳐댄다. “왜 쟤는 안 깔려? 신입이잖아! 내가 서열 4위야!” “넌 뭐야?” 대광이 씹듯이 말하곤 선일을 노려본다. “씹혔어어――――!” 머리를 움켜쥐며 절규하는 동현을 밀쳐두고, 대광과 선일은 동시에 서로를 노려본 채 일어섰다. “씹혔어! 씹혔어! 왜 모두들 날 무시하는 거야!” “형, 시끄러워.” “나쁜 자식! 너랑은 안 해! 나보다 나이 작은 놈하고는 안 해!” “내 컴이랑 사무기기는 모두 이리로 택배운송 시켰으니 곧 올겁니다.” “뭐야?!” “매달 수입금의 반을 드리죠.” 주춤하던 대광이 자리에 앉는다. “배신자! 돈의 노예! 싫다니까! 내가 위안부냐! 쟤는 싫어!” “형.” 진지하게 말했다. “TV, VTR, 오디오, 컴, 모두 이리 와. 오락도 할 수 있고 내가 소장한 비디오만 300개가 넘어. 다 올 거야.” “……피, 필요 없어. 그딴 거.” “나, 매주 주말이면 데리고 가서 음식점 풀코스로 먹게 하고 영화 볼 거야.” “…으응…하지만…” “형이 원하면 뭐든, 다.” “…으으…” “침대로 킹사이즈로 주문했어. 물침대로.” “……” “사랑해 형.” “……” “새로 나온 007이랑 스타워즈 에피소드1 봤어?” “아니.” “지금 올 거야. 출시예정 비디오 책자 볼래? 매트릭스도 못 봤겠네?” “그거 TV에서 선전하는 건 봤어. 임창정이 따라 하는 것도…” “아직 못 봤구나. 나 그것도 있어. 제일 먼저 그거 보자.” “…응….” “자, 허락 떨어졌으니 됐죠?” 뒤돌아서며 자신만만하게 웃는다. “…벨도 없는 놈.” “벨도 쓸개도 간도 없는 놈.” 대원이 상권이가 경멸의 눈빛을 담아 눈을 내려깐다. 대가 또 뭘했다고! “이번 007에서 소피마르소가 본드걸이에요.” 불쑥 한 선일이의 한마디에 조용해진다. “정말이야?” “새빨간 드레스가 가슴이 보일락말락하던데… 올 누드 침대씬도 나와요.” “……” 문명의 이기. 테크놀러지와 최첨단 기기로 중무장한 선일을 이길 수 있는 자는 현재 없었다. …그리고 아직 그들은, 선일이 상권 3인방의 변신 사실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